입력2006.04.03 14:00
수정2006.04.03 14:01
"정치적 불안정은 경제 성장에 필요한 대내외 투자를 약화시킵니다. 한국은 1960∼85년동안 연평균 5.25% 성장했는데,정치 안정이 뒷받침됐다면 그보다 1%포인트 높은 6.25%의 성장이 가능했을 겁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3층 교수 회의실.
80여명의 학생들 시선이 강단 앞에 선 파란 눈의 미국인 교수에게 집중됐다.
주인공은 매년 노벨 경제학상 '1순위'로 거론되는 로버트 배로(Robert J Barro·58)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초청으로 지난 6일부터 경제학과 대학원 과정인 '경제성장 이론과 실증 분석' 강의를 시작한 배로 교수는 이날 신고전학파 성장 이론인 솔로우(solow) 모형을 설명하며 간간이 자신의 주장을 덧붙여 나갔다.
그는 "정부는 재정 지출을 통해 민간 생산성을 증가시키려는 경향이 있지만 실증적 근거에 의하면 그런 효과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성장을 감소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배로 교수는 또 "정부 투자는 자본 축적의 근간이 되는 민간 저축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투자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어로 1시간30분동안 진행된 수업에는 학생들의 참여 열기도 뜨거웠다.
'인적 자본의 질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과 '노사 관계와 같은 경제 변수의 역할' 등을 묻는 학생들의 질문이 강의 중간 중간 이어졌다.
강의에 참가한 김수현씨(경제학과 4학년.26)는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만났던 배로 교수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궁금한 점을 질문할 수 있어 영광"이라며 "어려운 경제 이론을 실제 국가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해 이해하기 쉬웠다"고 말했다.
배로 교수는 오는 21일까지 모두 9번 강의하고 경제학부 교수와 주 1회 세미나, 공개강연 등을 하는 조건으로 5만달러를 받는다.
해외 저명 경제학자들이 받는 해외 강연료와 비교할 때 비교적 낮은 액수다.
이번 배로 교수 초청에는 이지순, 이창용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와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등 그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학자들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로 교수는 강의가 끝난 뒤에도 한국에 대한 자료 수집을 위해 다음 달 초까지 국내에 머물 예정이다.
배로 교수는 "한국의 경기 침체는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 침체와 맞물린 일시적인 현상일 뿐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은 크다"며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보다는 금융 시스템 선진화와 기업 구조조정 등 근본적인 체질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한국 학생들은 수학(數學)능력이 탁월하고 경제 이슈의 이면을 읽는 '경제적 안목'(economic insight)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지난 1970년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배로 교수는 합리적 기대 이론의 기틀을 마련하고 이를 실물 경제에 적용함으로써 거시경제 이론 발전에 공헌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경제 성장에 독재 체제나 분배 문제 등 정치사회적인 요인이 끼친 영향을 실증적으로 연구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