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의 옥포조선소 선행도장부. 수백t짜리 블록을 1차 도장(색칠)하는 이 부서의 근로자 1백91명중 80명이 최근 산업재해 판정을 받아 입원을 앞두고 있다. 자칫 부서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선행도장부는 녹과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과정에서 유기용제 등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사용하는 데다 제한된 작업공간에서 반복 동작을 되풀이 해야 하기 때문에 신체 피로도가 높다. 하지만 업무의 특성을 감안해도 전체의 40%가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산재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회사측은 하소연하고 있다. 산재 판정을 받은 이들의 병명은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 장기간 반복작업으로 근육통과 신경 이상을 호소하는 병이다. 근막통증 증후군, 경추 디스크, 염좌는 물론 흔히 '오십견'으로 불리는 어깨결림 현상도 포함된다. 병명만 수백 가지가 넘어 의사들조차 산재 여부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질병이다. "회사 업무로 병이 생겨 일을 할수 없다면 회사가 충분한 보상과 요양을 제공해야 하지요. 하지만 '비성실 요양자'(꾀병)도 적지 않은 것 같다는게 문제입니다." 회사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비성실 요양자란 산재 판정때 내려진 치료기간을 채우고도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는 환자를 말한다. 대개 개인병원 등에서 추가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서를 받아내 치료기간을 무한정 늘리고 있다. 대우조선의 경우 근골격계 질환자의 평균 요양기간은 1년7개월(5백일). 일반 건강보험 환자의 2개월과 비교하면 거의 9배에 달한다. 작년 3월 집단요양 신청으로 근골격계 질환 판정을 받은 산재환자 76명중 54명은 아직까지 현장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 환자가 이처럼 늘어나는 것은 요양기간에 지급받는 급여가 정상근무 때보다 10~15% 가량 많은 데도 원인이 있다. 대우조선의 생산직 월 평균 급여는 3백80만원 수준. 산재 판정을 받으면 산업재해보상법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에서 평균임금의 70%가 나온다. 여기에 회사에서 상여급 성과급 연월차수당 휴가비를 전액 지급한다. 특별위로금과 장애보상금까지 합치면 월 수령액이 4백만원을 웃돈다. 게다가 금속노조가 올해 이 질환을 단체협상의 최대 이슈로 내세워 '전략적인 산재신청'이 크게 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산업재해 요양기관으로 지정된 한 병원의 전문의는 "판정 기준이 모호한데다 환자들도 막무가내식이어서 웬만하면 산재 판정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정규직 사원 7천명 가운데 산업재해로 요양중인 인원은 5백42명(5월2일 기준). 지난 98년 1백52명이었던 산재환자가 2001년 2백23명, 지난해 3백76명으로, 신규환자가 매년 1백%씩 급증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올해안에 생산직 10명중 1명이 병원에 입원할 것으로 보인다는게 회사측 설명이다. 이중 75%가 근골격계 환자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선박건조 일정을 2주 가량 늦췄다.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근골격계 환자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산재보험료로 2백억원을 썼습니다. 그래도 보험료로 막을 수만 있다면 괜찮겠습니다. 매출손실이 보험료보다 10배나 많은 2천억원이나 됩니다."(차석주 경영기획팀장) "3D 업종 기피로 현장에 투입되는 신규 인력은 자꾸만 줄어들고 환자들은 급증하고...이러다가는 자진 폐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김경일 관리담당 상무의 하소연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사업주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 의무와 함께 처벌조항을 신설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마련,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산재 대상 범위와 증상, 장애 진단, 보상 기준 등 세부 사항까지 구체적으로 규정해 시비를 차단하고 있는데 반해 국내법은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채 사업주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거제=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