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외환시장이 지난달 중순 국가 리스크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의 상황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주가 폭락과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공세,역외세력의 달러 사자(원화 팔자)에 이은 환율 폭등 등이 그대로 재현되는 양상이다. 투자심리가 불안해질수록 안전자산 선호 현상은 가속화돼 국고채 금리가 연중 최저(채권값 연중 최고)를 기록했다. 사스(SARS.급성 중증호흡기 증후군)확산 공포에다 다시 북핵 위기까지 겹치면서 25일 금융시장은 외국인들에 의해 강도 높은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았다. SK글로벌 사태나 카드채 부실 문제 등 국내 금융시장의 잠재된 불안요인까지 고개를 들고 있어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외국인 올 들어 1조7천억 매각 북핵 관련 베이징 3자 회담을 전후한 최근 닷새 동안 외국인들은 국내 증시에서 4천억원에 가까운 주식을 팔아치웠다. 올 들어서만 1조7천억원어치의 주식을 내다 팔았다. 회담 성과에 대한 우려에 이어 북한의 '핵보유 시인'으로 이어진 일련의 파장이 외국인 매도공세를 가속화한 것이다. 하지만 증시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사스(SARS)와 노무현 정부의 친(親)노동계적 성향을 꼽고 있다. 사실 작년말 북한이 핵 카드를 들고 나왔을 때부터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미사일 실험 발사,그리고 핵보유 선언이라는 절차는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예상돼 왔던 터다. 블룸버그 등 해외 경제계는 이같은 시나리오를 연초부터 공공연히 거론했고 외국인 매도공세는 이미 작년 하반기부터 가속화됐다. 정종현 제일투신운용 포트폴리오팀 부장은 "북핵 문제 해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것으로 내외국인 투자자들 대부분이 예상해 왔다"며 "최근의 외국인 매도세는 사스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LG화학 등 한국증시의 대표기업들이 중국 관련 사업에 승부를 걸고 있는 마당에 중국을 중심으로 한 사스의 확산은 주식시장이 가장 꺼리는 불확실성의 증폭이라는 차원에서 외국인의 헤지성향(위험회피)을 자극했다는 얘기다. 메리츠투자자문 박종규 사장은 "사스와 북핵 문제 등 외부적 요인에 더해 철도노조 파업협상에서 보이는 정부의 친노동계 성향이 한국시장에 대한 매력을 잃게 했다"고 지적했다. 박 사장은 "가뜩이나 대내외적인 여건이 최악으로 치닫는 마당에 실리를 떠난 신정부의 개혁성향은 옳고 그름을 떠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력을 떨어뜨리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요동치는 환율 외환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이달 들어 10일 연속 하락세(거래일 기준)와 5일 연속 급등세가 이어지는 널뛰기 장세를 보이고 있다. 열흘간 54원 가량 급락(4일 1천2백58원→18일 1천2백3원90전)한 뒤 이번 주 들어 닷새 동안 33원 가량(→25일 1천2백37원80전)이나 치솟았다. 환율이 요동침에 따라 기업들의 환 리스크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7원이나 급등,1천2백40원선에 바짝 다가섰다. 북한의 핵 보유 시인과 북·미·중 3자 회담이 중도에 끝나면서 역외세력이 환율 상승세를 주도했다. 역외 세력의 '공격' 성격을 띤 달러 매수,하루 10원 이상의 환율 등락폭 등 3월 중순 위기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외국인들의 공격적인 주식 순매도로 시장에서 달러수요가 커진데다 엔화가치도 약세로 돌아서면서 환율 상승폭이 더욱 확대됐다. 수출 대금을 환전하려는 기업들이 간간이 나타나긴 했지만 외환시장의 달러 갈증을 풀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달러화가 급등하면서 달러를 팔고 보자던 세력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며 "오히려 달러를 사자는 쪽의 마음이 다급해지는 양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안재석·박민하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