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리요네는 지난주 프랑스 본사에서 신용위원회(credit committee)를 열고 한국기업 전반에 대한 신용도를 재점검했다. 삼성 LG 현대차 등 주요 기업의 재무구조를 분석하고 북핵사태로 촉발된 한국의 위기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을 실시했다. 회의 결과는 한국의 현재 상황이 최악은 아니라해도 '상당한 위기국면'이라는 것. 한국의 각 기업별 여신 한도를 하향 조정하라는 지시도 추가적으로 내려졌다. 삼성과 현대차에 대해서는 탄탄한 영업기반과 수익구조를 갖췄다는 진단이 내려졌지만 한국 전체의 위험도가 높아졌다고 판단,여신 한도는 늘리지 않기로 했다. LG에 대해서는 하향 조정 결정이 내려졌다. 지난해 사업자회사와 지주회사로 쪼개지면서 부채비율이 다소 높아진 LG전자와 업종 자체의 불확실성이 커진 LG상사의 여신을 줄이기로 했다. ◆ 한국에 대한 불안심리 여전 다른 외국 은행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HSBC 등 한국 내 여신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은행의 경우 SK사태 이후 국내기업에 대한 여신을 줄여나가고 만기가 돌아오는 대로 즉각적인 회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전면적인 거래 중단은 아니지만 한국 내 여신 비중을 줄여나가라는 것이 최근 내려진 본사의 방침"이라고 전했다. 외국 은행들은 이에 따라 한국지점 외에 홍콩 도쿄 프랑크푸르트 런던지점에서도 한국기업 해외법인과의 여신 거래를 재점검하는 한편 본사 보증을 반드시 받아오도록 하는 등 거래 조건을 강화하고 있다. 또 재무구조에 이상징후가 포착된 기업의 경우 약정만기가 돌아오는 즉시 회수에 나서도록 하고 있다. ◆ 국내은행, 외화대출 사실상 중단 외국 은행들이 국내 기업 및 은행에 대한 여신 한도 축소에 나서면서 국내 시중은행의 외화대출도 사실상 중단됐다. 환리스크가 커진 탓도 있지만 외화유동성에 비상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H은행 등은 지난달부터 외화대출을 중단했다. 국민 우리 신한은행 등도 대출자격과 심사조건을 강화했다. 일부 은행은 외화대출 규모를 지난해보다 80% 줄이기로 했다. 외환은행은 본점에서 외화대출 한도를 직접 관리하고 있으며 신용등급과 업종에 따라 외화대출에 차별을 두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들어 SK에 대한 여신이 많은 일부 은행들이 외화유동성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안다"며 "이에 따라 외화 조달금리도 상당히 높아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북핵과 이라크전쟁 여파로 환율 변동폭이 확대되면서 환리스크가 커진 것도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 수출창구 종합상사가 우선 타격 기업 중에서는 종합상사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거의 모든 업무가 은행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SK글로벌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보이지 않는 잠재적 부실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과 업종 자체의 불확실성이 원인이다. 게다가 ㈜대우의 사례에서도 확인됐듯이 종합상사는 지급불능의 상황에 빠질 경우 대출금 회수율이 일반 제조업체의 절반에도 못미칠 정도로 재무구조가 취약하다. 사실상 자산이 거의 없어 신용도만 보고 거래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게 은행들의 분석. 외국 금융회사가 SK글로벌 해외법인에 대한 독자적인 채권 회수에 나서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수출창구인 종합상사에 대한 신용제공 중단은 외환상황을 악화시키는 잠재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해외 IR을 개최하는 등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외국계 금융회사의 이같은 움직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제2의 대우사태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후속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