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두터운 믿음을 잃지않았던 한국은행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 해 성장 전망을 대폭 하향 조정하자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현재 한국 경제는 바닥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는 말로 우리 경제가 처한 '괴로움'을 압축했다. KDI는 추경편성이나 법인세를내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소비와 투자가 극도로 얼어붙은 가운데 시중자금은 넘쳐 흐르는 상황에서 물가가 뛰자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된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경제환경은 비관적이지만 금리변동이 경기 조절에 아무런 역할을 할 수없게 되자 한은은 이달 콜금리 목표를 현수준(4.25%)에서 동결했다. ◆ 비관적인 경제전망 한은과 KDI가 성장률 전망을 각각 4.1%와 4.2%로 대폭 하향 조정한 것은 상당히충격적이다. 이들 기관이 당초 각각 5.7%와 5.3%의 성장을 예상했고 작년 성장률이 6.2%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비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은은 줄곧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탄탄해 경제가 쉽게 가라앉는 일은없을 것이라고 자신해왔다. 하지만 최근엔 우리 경제가 '맷집'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이라크전쟁,북핵문제, SK글로벌사태에 '사스'로 이어지는 소나기 펀치가 잇따라 작렬하자 비틀거리지않을 수 없게 됐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은은 경상수지 전망치도 당초 20억∼30억달러 흑자에서 10억달러 적자, 물가는 3.4%에서 3.9%로 어둡게 봤다. KDI도 경상수지는 15억달러 흑자를 예상했으나 물가전망은 3.8%로 한은과 비슷했다. 그러나 심각한 것은 성장의 동력인 소비와 투자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은 민간소비증가 전망은 당초 5.3%에서 2.3%로, 설비투자는 10.4%에서 3.3%로 대폭 낮췄다. 민간연구기관들도 경제를 어둡게 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성장률 전망치를 3.8%로 크게 낮추고 경상수지는 12억달러 적자, 물가상승률은 3.8%로 각각 변경했다. 소비와 설비투자 증가율은 각각 -0.9%와 1.7%로 예상, 한은 보다훨씬 나쁘게 봤다. 메릴린치증권은 지난달 성장률전망치를 4.4%에서 3.5%, HSBC증권은 4.1%에서 3.4%로 하향 조정했다. 반면 국제통화기금(IMF)은 올 해 성장률을 5%로 높게 전망했고 JP모건과 ING는성장률을 각각 6.2%와 5.5%에서 5.7%와 4.9%로 낮추기는 했으나 국내 기관에 비해긍정적이었다. ◆ '진퇴양난'에 빠진 정부 이처럼 경기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으나 정부와 한은은 진퇴양난에 빠져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이라크전쟁이 경제에 미칠 휴유증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고 북핵문제, 카드채문제 등이 어떻게 진전될 지 확실치않은데다 부작용이 커 당장 재정 확충으로 경기를 부양기도 힘든 상황이다. 고민스럽기는 한은도 마찬가지다. 시중금리는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일 정도로 충분히 낮고 부동자금은 390조원에 육박하고 있으나 투자와 소비로 이어지지않고 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현금'을 움켜쥐고 내놓지않고 있다. 향후 경제상황에 대한짙은 불안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콜금리를 내려도 경기부양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물가 상승만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이때문에 한은은 4월 콜금리 목표수준을 4.25%로 동결, 11개월째 금리에 손을대지 못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1∼2개월 더 지속될 전망이다. 경제가 바닥으로 침몰하는 상황에서 탈출구가 보이이지않자 KDI는 급기야 "현재의 재정정책 기조를 중립 또는 소폭 확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를 위해 GDP의0.4%인 2조∼3조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총대'를 멨다. KDI는 한 발짝 더나가 법인세율 인하와 금리 인하로 경기하강에 대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섣부른 재정정책은 인플레를 유발하고 부동산투기 재발 등의 '화'를 부를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 논란이 예상된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이라크전의 후폭풍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북핵, SK글로벌, 카드채문제 등 아직 불투명성이 짙은 상황에서 재정정책이든 금리정책이든 한쪽으로 몰고가기는 어렵다"며 "1∼2개월 정도 추이를 지켜보면서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경제 침체가 가중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악으로 보긴 어려운만큼 추경편성을 통한 재정확충이나 금리인하 등은 부작용이 만만치않아 서두를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