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인민광장 인근에 자리잡은 현대상선 중국법인. 강호경 법인장은 요즘 앉아서 영업을 한다. 사무실로 밀려드는 선적 요청에 눈코 뜰 새가 없어서다. 매일 수십명의 하주들이 몰려와 자기네 물건부터 실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지난 겨울 코트깃을 세운 채 일일이 하주 사무실을 찾아다니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이런 호황은 처음입니다.'운임이 비싸다' '서비스가 나쁘다'며 갖은 불평을 하던 하주들이 선복(화물적재공간)부터 달라고 난리입니다." 강 법인장은 "5월부터 미주노선 운임을 FEU(40피트짜리 컨테이너)당 7백달러씩 올리겠다고 통보해도 비싸다는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며 "6월 이후 성수기를 앞두고 화주들의 최대 관심사는 보다 많은 선복 확보"라고 말했다. 최근 몇년간 하주들의 지속적인 운임 압력에 시달려왔던 해운업계가 모처럼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한동안 하주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가격협상력의 '칼자루'가 해운업체로 옮겨졌다. 이라크 전쟁과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항공사 등 대부분 물류업종이 죽을 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마디로 수송 선박이 모자란다. 해상운송의 중심축인 아시아~미주 아시아~유럽간 물동량은 계속 늘어나는데 선박의 적재공간은 그대로다. 세계 해운업계는 2000년을 전후로 이른바 밀레니엄 특수에 대응하기 위해 선복을 엄청나게 늘렸다. 6천5백개짜리 컨테이너를 실어나를 수 있는 초대형 선박을 속속 발주했고 신형 선박들도 투입했다. 운임 하락은 이같은 공급과잉 구조 속에서 야기된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태평양항로안정화협의회(TSA) 소속 14개 해운사들이 총 20억달러의 손실을 입을 정도로 경영이 악화되고 지난해 미국 서부항만 폐쇄에 이어 이라크 전쟁까지 예상되자 선사들은 선복 증강경쟁을 포기했다. 적자 노선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도 실시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올들어 아시아지역의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중국~미주노선의 경우 지난 2월부터 '풀 부킹'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수송량은 전년 대비 30%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 공장을 갖고 있는 컴팩의 경우 지난해만 해도 매주 40여개의 컨테이너를 미국에 보내는 데 그쳤지만 지금은 3백개 이상을 싣고 있다. 연간 1백만개의 컨테이너를 미국에 운송하는 한진해운 박용순 차장은 "가구 가전제품 PC 등을 중심으로 미국측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며 "중국 경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시황은 앞으로도 상당한 강세를 띨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2001년 9·11 테러사태 이후 소비 위축을 우려해 재고를 급격하게 줄여온 월마트 타겟 코스트코 등 미국의 대형 양판점들은 최근 줄어든 재고를 채우기 위해 아시아지역의 생필품 수입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 2000년 집중 판매됐던 PC도 교체 주기가 다가오면서 주문이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선복 역시 단기간에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모 외국계 선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선사들이 글로벌 동맹에 편입돼 있어 독자적인 선대 확충이 어려운데다 운임 인상 결의에 대한 '배신'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벌크선 시황도 8년만에 최대 호황을 맞고 있고 유조선 시황도 미국~이라크 전쟁통에 급등하고 있다. 수출업체들에는 안된 이야기지만 해운업계의 호황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