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5년 가까이 집권해온 이라크 바트당은 이 나라의삶의 모든 부분, 그리고 심지어 죽음까지도 통제하는 무시무시한 기구이다. 바트당의 무장당원들은 미국과 영국이 지난 20일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개시한이래 바그다드 시내에 대거 배치돼 공식적 불(不)항복 전략에 대한 이라크 주민들의복종을 공고히하고 있다. 바트당 지방조직 관리들은 전장의 전방에 나서왔고 이들중 일부는 목숨을 잃은것으로 보도됐다. 바트당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완전한 승리로 공식 집계(투표율 100%에 지지율100%)된 작년 10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절대적 통제를 과시했다. 바트당원의 수중에들어간 투표함은 민주주의의 도구가 아니라, 지난 1947년에 시리아에서 창설된 이당의 서기장을 겸직하고 있는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충성을 과시하는 도구인 것이다. 이 방대한 기구가 이번에는 침략군을 격퇴시키기위한 노력에서 온 나라를 후세인을 중심으로 단합된 하나의 힘으로 결집, 동원하는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바트당은 정치무대를 완전 장악하고 있는 세포조직들을 통해 이라크를 통제하고있다. 물론 여기에는 지난 1991년의 걸프전 여파로 바그다드의 통치로 부터 벗어난이라크 쿠르디스탄의 3개주가 제외된다. 바트당 체제의 중추로서 아랍세계의 진보적 사상을 적극 수용했던 중산층은 이라크의 지난 1990년 쿠웨이트 침공이래 가해진 유엔의 금수(禁輸)조처로 피폐해졌고끝없는 희생에 대한 열정은 시들었다. 구매력은 급감했고, 한때 많은 서방국가들에서조차 부러울 게 거의 없었던 이들의 생활 스타일은 심각히 위축됐다. "아랍 부활"의 당은 기독교인이던 마이클 아플라크와 수니파 이슬람교인이던 살라헤딘 알-비타르가 세운 사회주의적이며 세속적인 원칙들을 토대로 다마스쿠스에서창설됐다. 그러나 이같은 범(汎) 아랍 열망은 통제권을 둘러싼 이념 투쟁으로 지난 1966년부터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전 아랍세계를 포괄하는 새로운 "범 아랍 사령부"에 대한 다마스쿠스의 권위를 받아들이기를 꺼렸던 후세인은 바트당 이라크 지부 회의를창시했다. 이것이 이라크와 시리아의 당 지부를 영원히 갈라놓는 분수령이 됐다. 각국에 국가 사령부를 가진 단일 바트당이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된 것이다. 바트당은 지난 1968년 쿠데타로 이라크에서 권력을 장악했다. 아흐메드 하산 알-바크르 장군이 국가원수 겸 당지도자가 됐으나 실제 권력은 후세인이 휘둘렀다. 후세인은 지난 1979년 대통령 겸 국가 당서기장이 됐고 자신의 치열한 라이벌이던 하페즈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다마스쿠스에서 사망하기 불과 1주전인 지난2000년 6월에서야 스스로 자신의 직함을 "범 아랍 사령부" 서기장으로 개칭했다. 아플라크는 지난 1989년 파리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으며, 비타르는 1980년 파리에서 암살됐다. 비타르는 암살되기 수년전 진정한 바트당은 시리아나 이라크를 막론하고 더이상 존재하지않는다고 시인한 바 있다. (두바이 AFP=연합뉴스) hcs@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