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기만 하던 재계의 "입"이 열렸다. 취임 한달만에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가진 전국경제인연합회 현명관 상근부회장은 "우리 기업들은 구조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글로벌 경쟁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고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노사문제와 관련해서는 "6개월만이라도 분규를 없애보자"며 목청을 높였다. 현 부회장은 지난달 28일 취임한 후 회원 기업들과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전경련을 만들기 위한 기틀을 다지는데 힘을 기울여왔다. -취임하자마자 전경련 조직을 바꿨는데. "조직은 일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처한 환경에 맞춰 조직도 변해야 합니다. 아메바 같은 조직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조직을 슬림화하고 윤리경영 등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현안에 대해 스피디하게 대응하도록 했습니다. 이번에 개편한 조직도 문제가 있으면 보완할 것입니다." -지금의 경기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라크 전쟁이다 뭐다 해서 일시적 순환 측면의 불황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경제는 구조적으로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직전보다 상대적인 글로벌 경쟁력은 더 약화됐구요. 주력 수출품목들만 보더라도 중국과의 경쟁력 격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 몇년간 기업들이 대규모 이익을 낸 것은 본질적인 경쟁력과는 상관없습니다. 환율이 달러당 8백원에서 1천2백원으로 올라 가만히 앉아 매출이 늘었고,금리수준도 절반으로 떨어져 지급이자가 감소한 덕분이죠." -기업 경쟁력 원천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지금은 지정학적 위기가 아니더라도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지난 2∼3년간 내수가 진작된 것은 '가계 소득' 증가보다는 신용카드 같은 '가계 빚'이 늘어난 결과여서 요즘 문제가 되고 있죠. 전년동기대비 투자도 줄어들고 있고 무역수지도 적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고취시켜 경쟁력을 높이자면 정부가 기업환경 개선에 대한 희망을 보여줘야 합니다. 정책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무엇이 유효하냐 하는 점입니다. 정부도 기업실상을 알면 개혁정책의 속도등이 어느정도는 바뀔 것으로 봅니다." -최근 경제5단체에서 노·사·정 산업평화선언을 제안하셨는데,어떤 내용을 담으실 계획이신지.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춘투까지 겹치면 우리의 대외신인도는 급전직하로 떨어질 것입니다. 노사관계 안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어서 평화선언을 제안했습니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여러가지 근로조건을 협의해 나가되 분규만큼은 막자는 것입니다. 6개월이든 1년이든 이렇게 어려울 때만이라도 한번 해보자는 것이죠."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를 비롯한 정부의 기업개혁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대응하실 계획이십니까. "경영투명성을 높이고,부당 내부거래를 안하고,적정한 회계처리를 하자는 것은 원론적으로 맞는 얘기죠. 기업들도 반성할 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언제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우리 기업의 현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증권 집단소송제만 하더라도 미국만이 시행하고 있는데 미국도 그동안 소송남발을 방지하려고 여러차례 보완했습니다. 지난 80년대 우지파동을 봅시다. 관련기업이 우지사건으로 피소되자마자 시장점유율이 추락했는데 법정에서는 무죄판결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시장점유율이 원상회복될 수는 없죠. 소송을 당하는 순간 주가가 하락하는데 누가 손해를 봅니까. 결국 소액주주들 아닙니까. 기업 입장에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집단소송제도 원칙상 수용하되 소송남발을 막도록 보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출자총액규제의 적용제외나 예외인정 규정에 대한 재검토 방침을 밝혔는데. "예외조항들은 작년 4월부터 시행됐는데 1년 해보고 바꾸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주요 제도인데 앞으로 1∼2년 더 해보고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정책의 예측가능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증권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출자총액 규제는 폐지해야 할 것입니다." 현 부회장은 "요즘같이 할 일 많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일할 맛 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나 자신도 항상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는 말로 고충을 토로했다. 글=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