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콘드라티예프 제5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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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장기적으로 상승(확장)과 하강(수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 중에서 50~60년을 주기로 나타난다는 콘드라티에프(Kondratiev)파동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국면은 어디에 해당할까.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한 "제1파"로부터 따질 경우 1990년대부터 세계경제는 "제5파"에 진입했다는 것이 종래의 분석이다.
그리고 지금은 정보산업 생명공학 등 신기술산업들이 주도하는 "확장국면"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9.11 테러,아프간 전쟁,이라크 전쟁 등은 우리가 기대하는 "확장국면"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지금 미국경제는 군수(軍需)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간다는 분석이 있다.
테러방지 전쟁준비 등을 명목으로 작년의 국방지출은 전년대비 9.3% 증가,지난 67년(베트남 전쟁중)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국방지출 증가는 물론 일부 하이테크 산업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
하지만 국방지출을 매개로 한 "정부의존의 성장 떠받치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오히려 그로 인해 세계경제에 미치는 후유증이 더 걱정이다.
그렇다고 콘드라티예프 파동의 "확장국면"이 끝나고 "쇠퇴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도 없다.
90년대 IT(정보기술)가 IT의 전부도 아니고,생명산업과 나노기술 등은 아직 제 때를 만나지 못했다.
우리의 기대가 너무 높았고 성급했다는 점에서 신기술산업의 "조정국면"이란 진단도 나왔지만 문제는 이 조정국면이 언제까지 갈것이냐 하는 것이다.
전쟁은 테러로 촉발됐지만 이것이 "조정국면"과 겹쳐있다는 점은 그냥 흘릴 수 없다.
인과관계를 정확히 따지긴 어렵지만 "조정국면"이 길어지면 전쟁의 "관성"도 그만큼 지속될 위험이 있다.
이라크 전쟁의 또 다른 동기라는 석유산업이 콘트라티에프 "제4파"에 해당한다는 것도 그렇다.
"조정국면"의 조기 해소 기대는 그래서 크다.
이런 기대는 우리입장에서 더 절실하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대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95년,96년에 1만달러를 넘었으나 외환위기를 맞아 추락한 이후 5년만에 다시 회복한 것이다.
"환율효과"가 적지 않았다는 분석이고 보면 아직은 불안한 1만달러다.
이러다가 1만달러대 언저리에서 거의 10년의 세월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동안 "개혁을 하겠다"는 정권들만 만났는데도 왜 이럴까.
1만달러대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역시 신산업의 확장이 절실하다.
일본의 사례도 그러하다.
일본이 1인당 명목소득 1만달러를 돌파한 것은 84년이다.
그동안 물가상승으로 달러화의 구매력이 떨어진 점을 감안하면 실제가치로는 물론 더 거슬러 올라간다.
어쨌든 그 시기는 콘트라티에프 "제4파"에 해당하고 일본은 전자 등 당시의 신산업을 주도한 국가였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던 날 청와대에서는 과학기술부의 업무보고가 있었다.
업무보고는 "포스트-반도체 초일류기술 개발"로 시작됐다.
다름아닌 정보 생명 나노 등 콘트라티에프 "제5파"에 해당하는 주도 기술산업들이 그 대상이다.
지금 정부 기업 모두 "제5파"의 "2단계 확장국면"을 탈 준비가 되어있는 걸까.
대통령은 과기부 산자부 정통부를 보고 "먹을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모양이지만 정부가 먹을거리를 찾아내기만 해서 다 되는 것이라면 1만달러대에서 이렇게 헤매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뛰어야 할 것은 기업이다.
하지만 지금 기업의 신경은 또 다시 정부가 하겠다는 "개혁"에 온통 쏠려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콘드라티예프 "제5파"를 타지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산업연구원이 "한국경제의 위기재발 가능성에 대한 분석"이란 보고서를 내놨다.
다음의 위기는 산업경쟁력의 약화로 초래될지 모른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안현실 논설 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