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을 준비해왔지만 전시하기가 솔직히 겁납니다."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최대 정보통신전시회인 '세빗(CeBIT) 2003'에 참가한 국내 MP3 플레이어 전문업체인 D사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해 12월 유럽시장 공략을 위해 독일에 지사를 설립한 이 회사가 세빗에 거는 기대는 무척 크다. 이번 전시회를 유럽시장 공략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세부전략도 세워놓았다. 유럽은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MP3플레이어 유망시장.MP3플레이어 시장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 북미지역서 이미 성숙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이번 전시회에 한국 외 대만 중국의 MP3플레이어 업체들이 대거 참여,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바로 유럽 시장을 잡기 위한 전략이다. 하지만 D사는 정작 세빗에 신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바로 중국업체들 때문이다.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제품을 내놓으면 곧바로 중국업체들이 값싼 모방제품을 내놓고 바이어를 빼앗아간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전시장에까지 중국 기업 경계령이 떨어진 것이다. 중국 경계령은 비단 MP3플레이어뿐 아니다. 한국이 종주국이라 자랑하는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휴대폰,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 등의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이 무섭게 국내업체들을 추격하고 있다. 중국 기업 경계령은 그들의 베끼기 탓도 있지만 국내기업들의 과당경쟁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빗 전시회에 참가한 I업체 관계자는 "국내업체끼리 제살깎기식 경쟁이 전시회장에서도 비일비재하다"며 "한 업체가 중국업체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는 소문이 나돌면 다른 업체가 저가공세를 벌여 계약을 파기시키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중국이 한국 기업들의 이같은 약점을 이용,필요한 기술을 빼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세빗을 돌아보면서 국내기업들이 중국 경계령을 넘어서는 길은 한가지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보다 창의적 아이디어나 기술이 녹아있는 제품,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디자인이나 품질을 가진 제품을 만들면 팔린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하노버=박영태 산업부 IT팀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