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식탁위의 식기들이 전부 일본제라는 걸 금방 아실 거예요.이건 해외공관에서 보내온 서독산이고요.어떻게 우리 기술로 이런 제품을 만들어 볼 순 없을까요." 73년 3월.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의 초청을 받아 청와대에 들어간 김동수 회장은 접견실에 마주 앉았다. 식탁위에는 외국산 본차이나(젖소뼈를 태운 가루를 첨가한 자기)들이 놓여 있었다. "노력해보겠습니다"라는 김 회장의 대답에 육 여사는 "꼭 해보시는거죠"라며 재차 물었다. 김 회장은 "당시 육 여사와의 만남은 본차이나 개발을 위한 숙명이었다"고 말한다. 바로 2년전인 71년. 시드니에서 본차이나 커피잔세트를 처음 본 순간 투명하면서도 부드러운 유백색,우아한 곡선,묵직하면서도 만지면 날아갈 것 같은 신비한 질량감에 매료됐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 회장은 본차이나를 생산하기 위해 일본 영국에 기술제휴를 의뢰했으나 냉담한 반응을 경험한 터였다. 이후 그는 철이 바뀔 때마다 영국 최대의 본차이나 제조회사인 영국 로열 덜튼(Royal Doulton)그룹의 회장에게 기술제휴를 위한 간곡한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본차이나를 처음 접한 지 2년만에 육 여사가 김 회장에게 우리 기술로 본차이나를 개발하라고 부탁한 것이다. 김 회장은 "청와대를 나오는 순간까지 계속 등에서 땀이 흘렀지만 '본차이나를 개발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회상했다. 김 회장은 2년동안의 좌절로 기진맥진해진 상태였지만 다시 기술전수를 위해 영국으로 갔다. 이번에는 지난 2년동안 로열 덜튼 그룹 회장에게 한국의 발전을 위해 기여해 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약간은 믿는 구석이 있던 터였다. "아시아에서 대리점 대표가 온다고 그랬는지 현관위에 영국국기와 태극기를 나란히 게양해 두었더군요.그 자리에서 한국 도자기 문화의 정통성과 이를 현대감각으로 재현하고 싶다는 소망을 간곡히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로열 덜튼의 회장으로부터 기술제휴 약속을 받아냈다. 한국도자기는 본차이나 보급에 있어 독자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도자기 명가와 기술제휴 계약을 맺게 되고 73년말 젖소뼈(Bone Ash)를 50% 이상 함유한 본차이나 개발에 성공한다. 김 회장은 "처음 생산이라 3천개 생산품 중 완성된 것은 디너세트와 커피세트 3벌씩이 전부였다"며 "그걸 받아든 육 여사가 무척 놀라워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 후 제대로 된 제품을 생산하기까지 6년이라는 기술축적의 시간이 필요했다. 점차 품질이 나아지면서 육 여사는 공작새 문양을 넣은 한국도자기 본차이나 식기를 청와대와 재외공관에서 사용하게 했다. 투명하고 단단한 상아빛의 도자기 '본차이나'. 한국도자기는 73년 첫 제품을 출시한 이후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이제는 영국 독일 미국 등지의 세계 유명 도자기 회사들로 한국도자기의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