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1:59
수정2006.04.03 12:01
"가산금리를 아무리 높게 주더라도 달러를 빌려야 할 상황인데 빌려주겠다는 외국은행이 없다."(A은행 외화 책임자)
"신디케이션(차관단)을 구성해 공모로 중장기 외화차입을 추진했으나 참여하겠다는 외국은행이 없다."(B은행 관계자)
이번주 들어 시중은행 외화자금팀에 비상이 걸렸다.
SK글로벌 사태가 돌출하면서 한국계 은행을 보는 외국은행들의 표정이 차가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시장에 불안을 느낀 외국은행들이 신용도가 낮은 한국계 은행들엔 크레딧라인(신용공여한도)를 동결해 더이상 외화를 빌려주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외화차입금 만기상환에 쫓긴 일부 은행은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팔아 달러를 긴급 조달하는 비상조치까지 동원하고 있다.
◆ 태도 돌변한 외국은행
은행 관계자들은 "SK글로벌 사건이 터진 후 외국은행들의 태도가 돌변했다"고 입을 모았다.
"외국은행들이 SK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북핵 위기는 원래 있던 악재'라며 가산금리를 조금 높게 부르는 정도였다.
그러나 SK문제가 불거지면서 한국은행들엔 가산금리를 터무니없이 높게 부르거나 아예 돈을 못 빌려주겠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시중은행 자금팀 관계자)
때문에 시중은행들은 이번주 들어 신규 외화차입은 꿈도 못꾸고 있다.
은행 자금담당자는 "만기가 돌아온 외화차입금의 리볼빙(만기연장) 때도 난색을 표하는 외국은행들이 있다"며 "미국과 캐나다계 은행들이 특히 심하다"고 전했다.
이 담당자는 "지난 97년 외환위기 직전 외국은행들이 초기 징후 때 돈을 빌려줬다가 물린 경험들이 있어 지금은 작은 징후에도 몸을 사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장 관계자는 "시중은행 입장에서 해외 차입시장은 현재 일종의 패닉상태"라고 귀띔했다.
◆ 해외차입 차질 심각
올해 국내 은행들이 계획했던 외화차입 규모는 약 1백20억달러에 달한다.
대부분이 외화차입금 만기상환용이다.
외화차입금의 만기가 돌아오면 미리 그만큼의 액수를 조달해 준비했다가 만기 때 갚아 나가야 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때문에 은행들은 올해 초 일찌감치 조달했던 외화로 당장 돌아온 만기자금을 갚으며 시장이 안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정이 그나마 괜찮은 국책은행이나 우량은행들도 차입규모를 줄이거나 일정을 순연했다.
국민은행은 이달 중 3억달러를 차입할 계획이었지만 상황이 악화돼 1억5천만달러로 줄여 추진중이다.
내달 중 외화차입을 계획했던 산업은행도 정부의 외평채 발행 결과를 보고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수출입은행도 4월중 해외 차입을 검토했으나 규모를 축소하거나 연기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은 시중은행들은 사정이 심각하다.
한 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거래해오던 외국은행에서만 안면을 봐서 조금씩 빌려주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한두 달 더 지속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처지여서 은행들은 외화대출이나 무역금융 규모를 늘리기는커녕 외화자산의 현 수준을 유지하는데 급급하다.
외화차입이 끊긴 일부 은행은 외화자금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팔아 달러를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병석.조재길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