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에 나타난 노무현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 기조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임기 내에 확고히 구축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는데 초점을 둔 햇볕정책을 뛰어넘어 장기적 관점에서 통일을 위한 밑바탕을 확실히 다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평화.번영'이란 화두를 던지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모든 현안의 대화를 통한 해결 △신뢰.호혜주의 실천 △남북 당사자 원칙에 기초한 원활한 국제협력 △국민참여 확대와 초당적 협력 등의 '평화 번영 4원칙'을 제시한 것은 이같은 맥락이다. 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남북간) 하늘과 바다와 땅의 길이 모두 열렸다"면서 "국민의 정부가 이룩한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면서 정책의 추진방식은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도 이같은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단기적으로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 해결에 주안점을 뒀다. 그 전제로 북한의 긍정적인 태도 변화를 강력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북핵 불용' 입장을 강조한 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한다면 국제사회는 북한이 원하는 많은 것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요컨대 대화를 통한 북한 핵문제의 해법에는 변함이 없지만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해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의사를 명확히 한 것이다. 이는 당선자 시절 대화와 지원쪽에 무게를 둔 것에서 한 발 후퇴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선 핵포기 후 지원' 주장과 보조를 맞춘 셈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할 것인지, 체제 안전과 경제지원을 약속받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북측을 강도높게 압박하고 나선 것도 눈길을 끈다. 북한 핵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까지 상정된 마당에 마냥 유화적 제스처만 취할 수는 없다는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면서 "어떤 형태로든 군사적 긴장이 고조돼서는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미국 보수진영 일각에서 일고 있는 '전쟁불사'라는 대북 강경책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미 동맹과 관련, "우리의 안전보장과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고 평가한 뒤 "소중히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한 것은 반미감정에 대한 미국측의 우려를 의식한 것이다. 그러나 한.미 동맹 관계를 '호혜 평등의 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대북 문제도 '당사자 원칙에 기초할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은 기존의 전통적 양국관계에 있어서 변화가 불가피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어서 향후 양국간 조율 과정이 주목된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