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전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유럽내 갈등과 분열의 골도 심화되고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17일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특별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이라크 공격 입장을 지지한 동유럽 10개국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EU 가입 후보들인 동유럽 10개국이 일방적으로 미국을 지지한것은 EU의 입장을 도외시한 "경솔한 행동"이라며 이로써 이 국가들의 EU 가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동유럽 국가들은 지난해 말 EU 가입이 확정됐으며 EU 의회 비준 등을 거쳐 내년에 EU에 가입할 예정이다. 몇년 걸친 준비와 논의, 협상을 거쳐 어렵게 확정된 'EU 확대'에 대해 특정 국가가 뒤늦게 제동을 거는 것은 EU 외교관례 상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시라크 대통령의 경고는 이라크 위기를 둘러싼 유럽의 분열상뿐 아니라 앞으로EU 확대가 경우에 따라서는 차질을 빚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공동외교안보 정책을 표방하는 EU가 이라크 위기를 둘러싸고 분열을 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유럽의 목소리를 높이겠다며 몇년 전 공동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직을 신설했던 EU는 이라크 사태를 계기로 주권을 달리하는 국가들의 공동 외교가얼마나 지난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EU는 이라크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하반기 이후 지금까지 이라크 위기에 대한공동 입장을 도출하지 못한 채 對이라크 정책을 15개 개별 회원국들에 맡겨 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라크 위기를 둘러싼 EU의 분열은 미국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영국, 미국의일방적 무력공격에 제동을 걸고 있는 프랑스, 이라크 무력공격 반대를 표방하는 독일 사이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에다 스페인, 이탈리아,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등 여타 12개국도 미국의 이라크 공격 지지와 유엔 이라크사찰 연장 사이에서 사분오열돼 있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덴마크는 지난달 헝가리, 폴란드, 체코와함께 미국을 지지하는 서한을 언론에 발표했다. 또 유럽과 북미의 상호방위기구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이라크 전쟁에 대비해 회원국인 터키의 방위를 보강하려다 프랑스, 벨기에, 독일로부터 제지당해 전례없는 신뢰성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동유럽의 EU 가입 후보국들은 이라크가 유엔결의안을 위반했다는 미국의 입장을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해 EU에 충격을 주었으며 EU는 이라크 위기 논의를 위한 특별정상회담을 열면서 후보국들을 초청하지 않아 이 국가들로부터 서운한 감정을 샀다. 이같은 유럽의 분열상은 이라크 위기가 지속되는 동안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유럽이 추구하고 있는 공동외교 노력에 큰 타격을 입힐 수밖에없을 전망이다. 전후 유럽의 안정과 번영에 지대한 역할을 해온 EU를 중심으로 경주해왔던 유럽국가들의 통합 노력은 이라크 위기를 맞아 최대의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