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외풍(外風)에 휘청거릴 때마다 시장참여자들은 "기관투자가는 뭘 하고 있느냐"며 성토한다. 사실 국내 기관들은 증시안전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 우선 주식을 최소 1∼2년 이상 보유할 수 있는 장기 자금이 부족하다. 펀드 수명이 짧고 펀드 규모도 수백억원짜리가 대부분이다. 주가가 하락할 조짐을 보이면 투신사들은 투자주체 중 가장 먼저 팔 준비를 한다. 언제 닥칠지 모를 고객의 환매(자금 인출)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과 기복이 심한 국내 주식시장의 여건 등을 고려하면 투신사들에 장기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대하기는 무리라고 할 수 있다. 펀드시장을 둘러싼 증권사와 은행 간의 무한경쟁시대에서 증권사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무엇보다 펀드의 장기화·대형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지난해 첫 선을 보인 후 투자자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적립식 펀드는 국내에도 장기·대형화 펀드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탈피해야 할 소형화·단기화=국내 투신사 자산은 미국 투신업계의 5%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펀드수는 작년 말 현재 5천7백개로 미국 8천3백개(2001년 말)의 70% 수준에 이른다. 펀드의 평균 운용자산은 2백60억원대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국내 펀드는 이처럼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수명도 짧다. 펀드평가회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설정액 1백억원이 넘는 펀드 2천2백36개 중 3년이 경과한 펀드는 2백96개로 13.2%에 불과하다. 그나마 주식형(성장형기준)의 비율은 37.9%에 이른 반면 채권형은 0.5%에 그치고 있다. ◆자금구조의 불균형=펀드가 소형화·단기화된 것은 새 상품을 통한 자금유치 경쟁,주가변동성 심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배경은 기관자금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투신사 수탁고의 70%는 금융회사 기업 등 기관 자금으로 이뤄졌다. 법인의 자금운용 계획은 대부분 6개월과 1년 단위로 세워진다. 평가가 운용기간에 맞춰 이뤄지는 것은 당연하다. 최상길 제로인 이사는 "수익구조의 변동성을 싫어하는 기관 자금의 속성을 감안하면 지금과 같은 수탁고 구조로는 펀드의 장기·대형화를 유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관들이 자금을 장기로 운용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안정적인 개인자금을 지속적으로 늘려가는 것"을 대안으로 강조한다. 이를 위해선 장기투자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게 이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증권업협회 투신협회 등 펀드시장과 관련있는 기관들이 올해를 투자자 교육의 원년으로 삼으면서 펀드투자의 장기화를 유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새 가능성 보인 적립식 펀드=전문가들은 지난해 첫선을 보인 투신사의 적립식펀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적립식펀드는 목돈을 한꺼번에 투자하는 기존 상품과 달리 은행의 정기적금처럼 매월 일정한 금액을 일정기간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정액식 상품이다. 적립식 펀드가 확산될 경우 펀드의 장기·대형화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미국의 펀드시장이 본궤도에 오른 것도 지난 90년대 초 적립식펀드인 '401K 연금(확정갹출형 기업연금)'이 활성화되면서부터였다. 강창희 PCA투신 투자자연구소장은 "은행권이 간접투자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함에 따라 적립식 펀드가 확산될 것"이라면서 "시황에 따른 펀드 마케팅은 지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