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캐나다가 14일로 수교 4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캐나다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북미 대륙의 광활한 영토와 천연자원을 가진, 미국과 유사한 나라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캐나다는 한국에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근대 문물을 소개해 줬으며 한국 시장에는 적극적인 투자자이기도 하다. G7에 속한 경제대국 캐나다는 상품.서비스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교역이 활발한 나라다. 교역량 대비 GDP 규모로 볼 때 세계 최대 교역국인 셈이다. ◆ 캐나다, 한국 근대화의 공로자 =한국과 캐나다의 관계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사회복지 활동을 펼쳤던 캐나다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됐다. 캐나다를 알게 된지 1백년이 훨씬 넘은 형제의 나라로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캐나다 선교사들은 서양 의약 및 교육을 한국에 들여온 주역들이다. 병원과 학교를 설립, 한국이 근대화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줬다. 한국의 '근대 의약 및 의학교육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올리버 애비슨 박사가 대표적 인물이다. 1893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이주한 애비슨 박사는 '고종황제 전문의'라는 타이틀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미국인 루이 세브란스 박사와 함께 병원을 세우고 세브란스 의과대학에서는 학생교육에 전념했다. 그의 후학들은 이후 국내 질병치료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일제 점령시절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프랜시스 스코필드 박사는 제자들에게 민주주의 가치를 전파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3.1운동 당시 일본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1년간 옥고를 치렀던 그는 1970년 임종할 때까지 일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냈다. 고아원 설립과 의학 교육에 전념했던 스코필드 박사는 국립묘지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이란 기록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다. 캐나다는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일원으로 세번째로 많은 2만6천여명의 장병을 파견한 나라이기도 하다. 5백16명의 캐나다 젊은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 교류영역 확대 가능성 높아 =양국은 그동안 유학 이민 등 인적교류를 중심으로 관계의 폭을 넓혀 왔다. 매년 1만명 이상의 한국 학생들이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고 있다. 유엔이 7년 연속 '살기 좋은 나라'로 선정한 국가답게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한국인도 해마다 증가추세다. 캐나다에는 약 15만명의 한국 교포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매년 9천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이주하고 있다. 한국은 캐나다 5위의 이민 송출국. 캐나다는 경제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 국가다. 지난 2001년에는 15억6백만달러를 투자, 두번째로 많은 외국인 직접투자(FDI)국이었다. 양국간 총 교역량도 39억달러로 한국의 12번째 교역대상국이다. 전력생산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월성지역 원자로 4기는 캐나다 원자력회사 제품이기도 하다. 우주항공 산업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캐나다는 미국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 핵심 기술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 분야에 대한 한.캐나다간 교류는 최근 들어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