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빅딜로 면모가 바뀐 해당 업종의 경쟁력을 평가하기는 사실 이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실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빅딜 탓이라고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대부분 업종에서 업계구도는 정부가 '원하는 대로' 됐다는 것이고 빅딜의 효과는 '생각과는 달리'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빅딜이 9개업종(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를 제외하면 7개 업종)을 대상으로 한 산업정책이었지만 핵심은 서너개 업종으로 압축된다. 핵심 중의 핵심은 나중에 결국 무산됐지만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맞교환이었다. 정부의 의지, 대우의 야심, 삼성의 방어가 묘하게 얽힌 이 게임은 결국 대우가 무너짐에 따라 없었던 일이 됐다. 실제 빅딜이 이뤄진 것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반도체. 아직까지도 많은 뒷말을 낳고 있는 반도체 빅딜의 경우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주장이 맞서 최종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1년반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결국 지난 99년 7월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인수했다. 이후 합병법인이 하이닉스로 회사 이름을 바꾸고 매각을 추진 중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이닉스로 바뀌어 부실 규모를 줄인 것인지, 아니면 두 회사로 남아 있을 때보다 기업 내용이 훨씬 악화된 것인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분명한 것은 빅딜의 대상이 되면서부터 현대전자나 LG반도체 모두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해외 바이어를 붙잡아 두는 것도, 신규 외자를 유치하기도,불안해하는 종업원들을 달래는 것도 모두 쉽잖은 과제였다. 현대석유화학과 삼성종합화학의 경우를 보자. 현대나 삼성의 경우는 대산단지에 있다는,그리고 적자 기업이라는 이유로 빅딜대상이 됐다. 두 업체 모두 외자유치 계획이 있었으나 빅딜 논의로 접어졌다. 5년이 지난 현재. 현대석유화학은 LG와 롯데의 컨소시엄에 매각절차를 밟고 있고 삼성종합화학은 외자를 유치해 합작기업으로 거듭나게 됐다. 결국 빅딜은 논의만 무성히 한 채, 시간만 낭비한 채 없었던 일이 된 것이다. 정부 주도로 빅딜이 강행되면서 독과점 문제가 도외시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발전설비가 두산중공업(옛 한국중공업)으로 일원화되면서 일부 업체는 해외에서 수주할 기회가 있어도 국내 업체끼리의 시비에 걸리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