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 리서치센터 박재석 팀장은 얼마전 코스닥등록기업인 한 정보기술(IT) 업체를 방문했다가 승강이를 벌여야 했다. 회사측에 올 4분기 추정실적과 내년 계획을 물어봤으나 회사측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바람에 언쟁만 벌이다 되돌아왔다고 그는 말했다. 기업들이 회사 내용에 대해 이처럼 함구하는 이유는 지난 11월 시행된 공정공시 때문.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 등 특정 그룹에 정보를 먼저 제공하는 것은 공정공시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기업측은 강조한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민감한 내용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자세로 일관하는 것도 공정공시제도의 원 취지에 어긋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공정공시제도가 지향하는 '정보 불평등 해소'는 정보의 원활한 유통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대신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기업들이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들에게 설명한 내용을 공시를 통해 바로 알려야 하는 일이 귀찮아 예전엔 거리낌 없이 제공하던 자료도 숨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장밋빛 전망을 담은 공정공시는 줄을 잇는다. 코스닥등록기업인 H사의 최근 공시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내년 매출과 순이익이 올해보다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같은 급성장 배경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없다는 점.회사 방침이 바뀌면 실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만약을 위한' 단서만 달았을 뿐이다. 코스닥증권시장 관계자는 "기업이 공정공시의 정확성을 판별해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는 투자자와 기업 사이에서 투자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한다. 그동안 일부 증권사와 애널리스트가 기업에서 얻은 정보를 주요 기관에 먼저 제공한 뒤 일반 투자자에겐 뒤늦게 알리는 문제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공정공시를 핑계 삼아 기업들이 '모르쇠'를 일삼고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내보낸다면 공정공시는 또다른 정보 왜곡의 창구가 될 수 있다. 김철수 증권부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