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코미디 "휘파람공주"(이정황 감독)는 최근 한반도에 불고 있는 남북화해와 반미정서위에 구축된 남남북녀의 로맨스다. 제목은 북한의 인기가요 "휘파람"과 가상으로 설정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숨겨진 딸을 지칭하는 공주를 합친 말.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북한의 공주가 평양예술단 일원으로 남한에 왔다가 호텔을 탈출해 무명밴드 단원과 펼치는 사랑얘기다. 평민의 삶을 동경하던 유럽의 공주 오드리 햅번이 궁전을 탈출해 기자 그레고리 펙과 연애하는 내용의 "로마의 휴일"(53년)과 얼개가 비슷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시공을 훌쩍 뛰어 넘어 한반도의 미묘한 정치적 역학관계를 배경으로 삼아 멜로보다 액션 요소가 강하다. 남한의 국정원 팀장과 북한 인민 무력부요원이 공조해 공주의 신변을 위협하는 미국CIA의 매파와 맞선다. 미국을 적국으로 설정한 구도는 한반도통일에 미국이 걸림돌임을 암시한다. 극중 CIA는 남북정상회담을 무산시키기 위해 공주 암살작전을 편다. 낭만적 민족주의를 앞세워 반미를 외치는 것은 사실 북한의 입장과 동일하다. 역설적으로 한국과 미국이 진정한 우방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런 저항의 몸짓들을 수용해야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주요 캐릭터들은 반항적이다. "공주" 김지은(김현수)은 분방한 성격에다 자유를 갈망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록밴드단원 준호(지성)도 마찬가지다. 록은 "분노의 노래언어"이며,록밴드의 이름 "노펜스"는 "장벽이 없다"는 뜻이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고,한핏줄인 남북한도 결국 그럴 것이란 희망을 함의한다. 영화의 도입부는 약간 당혹스럽다. 북한예술단원 지은은 과장된 표정이며,북한말을 전혀 쓰지 않는데다 무척이나 여유롭고 장난끼마저 보인다. 또 왜 호텔을 탈출하려는지 의문부호들이 꼬리를 문다. 하지만 그녀가 외국에서 자랐고,북한 최고지도자의 딸이란 그녀의 신분이 밝혀지면서 의혹은 점차 해소된다. 김현수는 그늘없고 늘 웃음을 머금은 얼굴과 장난기마저 넘치는 얼굴에서 진짜 공주처럼 보인다. 그녀를 지키는 북한요원 상철역의 성지루는 진지하고 절도있는 성품의 캐릭터로 훌륭하게 변신했다. 반면 남한의 국정원 요원 석진역의 박상민은 과장스런 코믹연기에서 그다지 매끄럽지 못하다. 또 남북한과 미국간의 총싸움의 액션구도로 인해 웃음코드가 약화됐다. 24일 개봉. 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