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와 연구원 창업이 많아 기술 벤처기업의 요람으로 불려왔던 대덕밸리가 겨울 한파에 꽁꽁 얼어붙고 있다. 닷컴 중심의 테헤란밸리를 강타한 "벤처한파"가 대덕마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창업이 끊기고 개점휴업상태인 벤처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문닫는 기업마저 속출하고 있다. "대덕에는 안올 것 같던 벤처한파가 최근들어 거세게 밀려들고 있다"고 벤처기업인들이 말한다. 또 물건을 만들어 놓아도 팔리지 않아 자본금만 까먹고 있다고 한탄한다. 벤처를 떠나는 직원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문닫는 기업들="성공했다는 벤처기업들이 최근 잇따라 문을 닫고 있습니다.소리 소문없이 사라진 기업까지 합치면 문닫은 기업이 20개 이상은 됩니다." 정보통신분야 선도기업으로 연간 1백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던 H통신을 비롯 신소재 개발업체인 S금속,미용기 생산업체인 K사,MP3를 만들던 O사,마이크로드릴 생산업체인 H사 등 대표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정부출연연구소 벤처담당자는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휴업 중인 기업들이 늘고 있어 내년에 더 많은 기업이 간판을 내릴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한 연구소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있는 20여개 기업 중 5∼6개는 이미 휴업에 들어갔다. 또 다른 창업보육센터도 20여개 업체가 간판만 걸어놓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인근의 창업보육센터 벤처빌딩 등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대전의 경제와 산업환경이 경인지역이나 부산·경남 등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도 대덕밸리의 어려움을 더해주고 있다. 지원금융기관부족,시장과 지역산업간 연결고리 취약 등도 대덕밸리 입주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중의 하나다. 이로인해 벤처기업들의 도산과 함께 성장단계에 있는 유망벤처의 탈(脫)대전 현상도 생기고 있다. ◆줄어드는 창업=벤처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창업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창업을 준비하다 포기한 연구원은 "지금같은 상황에서 기술만 갖고 뛰어들었다간 낭패보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연구원이 창업만 하면 투자자금을 갖고 오던 시절은 지나갔다"고 덧붙였다. 창업이 가장 활발했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창업은 뚝 끊겼다. 지난해엔 아예 없었고 올들어서도 1개만 창업했다. 2000년까지만해도 매년 15개 정도의 기업이 문을 열었었다. KAIST의 학생창업도 줄고 있다. 매년 20∼30개 기업이 창업하던 2,3년 전과 달리 올들어선 5개가 창업하는데 그쳤다. 표준연 원자력연 기계연 등 대부분의 연구소들도 마찬가지다. 대전시는 대덕밸리 입주기업은 8백20여개에서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당초 대전시는 올해 1천50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벤처로 확인받은 기업은 지난해 5백10개에서 올해는 4백30개로 줄었다. ◆투자자금 끊긴지 오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지만 빈손으로 돌아옵니다."(벤처기업인) "창투사들도 투자자금 회수가 안돼 구조조정을 하는 판에 투자를 하겠습니까."(대전시청 관계자) 대덕밸리 벤처기업들은 투자자금을 유치하지 못해 힘겨워하고 있다. 대전시가 벤처기업 투자를 위해 조성한 투자조합도 올해 7개 기업에 34억원을 투자하는데 그쳤다. 이는 작년과 재작년 연평균 15개 업체에 72억원을 투자한 것과 비교해 크게 감소한 것이다. 이인구 대덕밸리벤처연합회 사무국장은 "대전시가 투자한 기업 외에 투자자금을 유치한 대덕밸리기업들은 없다"고 말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투자할 만한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게 투자담당자들의 얘기다. 최근에는 대형 벤처캐피털인 K사가 대전지점을 폐쇄하는 등 이 지역 투자에서 손을 떼기도 했다. 한 벤처기업인은 "같은 연구소 창업자들이 많아 중복되는 아이템을 갖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며 "자금유치에 매달리기보다는 M&A(기업인수합병)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대덕밸리(대전)=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