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방임형 자본주의를 신봉해온 홍콩 기업인들이 정치적노선을 달리해온 민주화 추진세력과 `적과의 동침'을 모색중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과거 좀처럼 `조합'이 이뤄질 수 없었던 홍콩의 은행가 등 재계인사들과 노조활동가, 민주화 투사들을 뭉치게 한 계기는 바로 홍콩 특별행정구 정청의 `체제전복활동 금지법' 제정 움직임이다. 홍콩은 지난 1997넌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자체 '소(小)헌법'의 '23장'에 체제전복활동과 함께 국가기밀 절취를 비롯한 기타 범죄행위를 일절 금지한다고명시했다. 그러나 홍콩 특구 정청은 최근 관계 법령을 뭉뚱그려 새 `체제전복활동 금지법'을 제정키 위한 작업에 착수, 중국 본토에서처럼 일부 금융정보나 논평이 불법으로규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홍콩 정청은 이 법률을 내년 7월께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홍콩 재계와 노조 및 민주화운동 세력 등은 이 법률이 비판적 논평이나 정보의소통을 억제해 결과적으로 `언론 재갈물리기'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큰 것으로보고 있다. 문제의 법률이 제정되면 시장경제에 필수적인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가로막아 홍콩이 공산당 지배하의 중국 본토에 대해 지켜온 경쟁우위를 잃게 될 것이라는지적이다. 최근 중국은행(中國銀行) 홍콩 분행(分行)의 연구원 C.Y 호가 홍콩 정청의 정책을 공개 비판해 중국의 주룽지(朱鎔基)총리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은 후 사임하면서이러한 우려가 더욱 고조돼 왔다. 그는 홍콩 달러화의 미국 달러 연동제에 문제를제기하는 연구보고서를 내놓은 후 사임했다. 홍콩에 있는 한 출판물의 편집 책임자로 업무차 중국에 자주 다녀온 컨설턴트이기도 한 버나드 찬은 "우리가 추구해온 것은 오로지 자유 뿐"이라며 문제의 법률이시행되면 말할 때도 더 조심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홍콩 정청은 680만명의 주민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주장이다. 홍콩 특구의 재무장관격인 재정사장(財政司長) 앤터니 륭은 새 법률의 적용을받게 될 `국가기밀'에는 방위,안보 및 첩보와 관련된 사안들만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청은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이 중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시각에 동조하는 애널리스트들도 없지 않으나 홍콩 금융가의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소(小)헌법' `23장'에 대해서도 자유로이 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걱정했다. 본토 정부와 밀월관계에 있는 몇몇 부호들은 드러내놓고 `23장'을 지지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다른 기업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침묵해온 기업인들사이에서 인권단체와 재야 민주화운동 단체들이 제기한 것과 같은 우려의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10여개 외국은행의 중역들은 최근 홍콩 정청 안보사장에게 `체제전복금지법'이정보의 자유로운 소통을 질식케 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입장을 전달했다. 총 고용인구가 25만명에 이르는 500여개 기업을 거느린 홍콩 주재 영국 상업회의소는 홍콩의 "지역적 국민적 특성이 사라져 결국 국제적인 비즈니스 중심지로서의매력을 크게 감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규모가 더 큰 홍콩 주재 미 상의(암참)도 곧 이 법률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홍콩의 노조들은 이 법률이 제정되면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세력으로 낙인찍혀활동이 전면 금지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홍콩 노조연맹 사무총장으로 입법원 의원인 리 추크-얀은 "남용될 소지가 틀림없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법률이 어떤 시사점을 던질 것인지는 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홍콩의 민간 연구소 `정치.경제 리스크 컨설턴시'의 봅 브로드푸트 소장은 "문제의 법률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결국 어떻게 시행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말했다. (홍콩 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