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여명을 헤아리는 촛불시위가 시청앞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청앞 광장은 4.19, 6.29, 월드컵 응원 등 한국역사의 고비마다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다.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시청앞 광장 시위가 종국적으로 한국역사에 어떤 전환점을 제공할지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올바른 균형자로서 한반도 평화통일에 힘써 달라'는 촛불시위를 통한 한국민의 주문이 일부 불순세력의 선동으로 '한.미관계 악화'라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래서 촛불시위를 벌이는 국민들은 '미군철수'와 같은 극단주의로 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즉 이번 촛불시위는 탈냉전 이후 지속돼 온 잘못된 한.미관계를 조금씩 시정해 가는 역사발전의 한 과정으로, 국익보호차원에서 나온 우리 국민의 대응이라는 이상의 의미해석은 경계하고 있다. 현재 정부당국자는 '한국 SOFA(주둔군지위협정)는 다른 나라 SOFA와 같은 수준'이라면서 '국민들의 여중생 사건 무죄평결에 대한 인식은 미국법을 잘 이해하지 못한데서 온 과민반응'으로 보는 것 같다. 물론 이 협정만 보면 한국 SOFA는 다른 나라 SOFA와 유사하다. 그러나 본 협정 외에 2개의 부속협정은 이 협정 내용을 제한하는 독소조항을 담고 있다. 여중생 사건 무죄평결의 핵심 전제가 된 '통신장비 이상'이라는 실체적 진실의 왜곡도 SOFA 합의의사록의 초동수사를 어렵게 하는 독소조항 때문이다. 2001년 개정된 SOFA는 형사관할권분야에서 피의자 신병인도시기를, 종전 최종판결에서 네 가지 전제조건 하에 기소 이후 시점으로 앞당겨준 것을 큰 성과로 꼽았다. 그러나 실제로 이 네 가지 조건 때문에 지금까지 기소 이후 신병인도는 거의 없었다. 더구나 부속협정은 1심에서 무죄가 난 경우 검사가 항소할 수 없도록 한 점, 미국정부 대표가 입회하지 않을 경우 행해진 진술의 증거능력 부인, 그리고 기소후 한국 수사당국의 심문금지, 형사관할권의 판단기준인 공무증명서 발급 및 유효성 판단주체를 한국법원을 배제한 미군장성급으로 한정한 독소규정 등엔 전혀 손대지 않음으로써 미군피의자의 인권보호에 영미법적인 '두꺼운 보호막'을 쳤다. 이러한 영미적인 독소조항은 '미.일협정'이나 '나토협정'엔 없다. 그런데 현행 SOFA의 문제점이 이번 여중생 사망사건의 초동수사에서 드러남으로써 SOFA가 한국의 형사사법주권을 과거 SOFA보다 더 침해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 실증된 것이다. 지난 3일 정부는 뒤늦게 대통령 지시로 SOFA 조약의 '개정'이 아니라, SOFA 운영 '개선'안을 내놓았다. 다시 말해 SOFA의 본 협정, 합의의사록, 양해사항이라는 국제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은 전혀 손대지 않고, 법적 구속력이 약한 한.미합동위원회의 합의사항 수준에서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1966년 냉전시대에 삽입된 SOFA의 독소조항이 3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한.미관계에 그대로 적용돼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정부의 SOFA 운영 개선을 통한 재발방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지난 95년 일본 오키나와 초등생 윤간 사건 때 미국이 직접사과를 하고, 피의자 신병인도 시점을 살인 강도 강간 같은 흉악범인 경우엔 기소이전에도 가능하도록 미·일합동위원회 합의사항 수준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 후 미국은 합동위 합의사항을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 법적 구속력 있는 SOFA 규정조차 미국이 지키지 않는 마당에, 정치적 신뢰에 기초한 합의사항을 지킬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자국민의 생명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책임 있는 한국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 정부는 한.미합동위원회를 소집해 우리 국민이 더 이상 좌절과 굴욕을 느끼지 않도록 SOFA의 근본적인 개정을 미국에 공식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한국민은 현재 SOFA 개정을 통해 미국에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한.미관계의 정립과 아울러 한반도 평화통일에 미국이 의미있는 역할을 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 asri@unitel.co.kr >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