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주당들의 음주습관은 크게 다르다. 독주를 물 마시듯 하는 한국 애주가들과 달리 일본 주당들은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을 주로 마신다. 그것도 모자라 주스나 얼음을 넣어 더 순하게 만들어 마시는 경우가 허다하다. 순한 술 음주습관 덕인지 만취돼 비틀거리는 행인은 밤 늦은 시각에도 거의 볼 수 없다. 어찌 보면 대다수 일본인들이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으며, 상당한 절제 의식을 가진 것처럼 비쳐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사노피 상태라보라는 제약회사가 최근 공개한 조사결과는 일본인의 새로운 음주습관 한가지를 보여 준다. 즉 '수면장애로 고생하는 일본인'의 비율은 21%로 조사대상 10개국의 평균치 25%를 여유있게 밑돌았다. 잠 못 이루는 밤 때문에 억지로 눈을 붙여야 하는 일본인들의 숫자는 그래도 다른 나라들보다 적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하지만 수면장애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술을 마신다는 일본인 응답이 30%에 달해 조사대상 국가중 1위에 올랐다. 의사와 상담하는 비율이 8%로 최하위에 그친 것과는 전혀 딴 판이다. 일본언론은 술로 해결하는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데 대해 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의사의 도움이나 약물을 뒷전으로 한 채 손쉽게 알코올에 의지하려는 수면장애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조사결과는 보여 주고 있다며 놀란 표정이다. 술로 수면장애를 쫓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임은 말할 것도 없다. 언론은 의학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습관성 음주가 되면 큰 일"이라며 "잠자리 전 술 한잔 하는 버릇을 빨리 버리라"고 촉구하고 있다. 감원 감봉의 칼날이 해가 다르게 날카로워지는 일본에서 대다수 보통사람의 피로지수는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자신도 불황 한파의 1차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그렇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고, 받지도 않으려는 일본 특유의 사회적 룰은 수많은 수면장애자들을 외부와의 단절과 고립으로 몰고 있다. 잠 못이루는 고민을 혼자 삭일 수밖에 없는 보통일본인들의 탈출구는 오늘 밤 역시 '술 한잔'이 될지 모른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