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혁명의 주역 체 게바라(1928∼67년)의 시집 '먼 저편'(이산하 엮음, 문화산책, 8천5백원)이 나왔다. 혁명가와 운동가로만 알려진 체 게바라가 시를 썼다는 사실은 그 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번에 나온 시집은 3년간에 걸쳐 체 게바라 문헌들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많은 관련자료들을 수집 정리해 나온 것이다. 아르헨티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는 프랑스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소포클레스 랭보 셰익스피어에 심취했다. 쿠바로 건너가 게릴라로 혁명운동에 동참한 그는 목숨을 건 전투 중에도 괴테 보들레르 등의 책을 배낭 속에 갖고 다녔다. 일기에는 수많은 전투기록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간결한 시 같은 글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시집에는 일찍부터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혁명가의 진지한 내면고백이 담겨 있다. '내 나이 열 다섯 살 때/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나의 삶' 중) 시집에서는 그러나 혁명가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체 게바라의 인간적인 면모도 발견된다. 시적으로 정제된 형식과 최소한의 언어를 통해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조용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 그의 시 속에 담겨 있다. '오늘은/어머니의 생신이다/나 때문에 언제나 두 손 모아 기도하시는/어머니의 애처로운 모습이 자꾸 떠올라/가슴이 아프다/언제쯤이면/꽃처럼 환하게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어머니의 생일' 중) 젊고 고독한 혁명가로서 문득문득 찾아오는 우수를 전해주는 분위기의 시들도 볼 수 있다. '휴대용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비틀즈의 노래를 듣는다/저 음표 어딘가에/세계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이유가 숨어 있으리라'('비틀즈' 중) 체 게바라는 쿠바혁명 성공 이후 눈앞에 열린 권력의 열매를 따먹기를 거부하고 순수한 초심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볼리비아에서 싸우다 불과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사르트르는 그를 가리켜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