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파워' 좌담회] 브랜드가 가격결정..차별화 전략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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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정책연구원(IPS)은 최근 실시한 '2002 브랜드 가치평가'에서 국내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의 브랜드 자산가치가 8조8천6백54억원(약 74억달러)으로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석달 가량 앞서 세계적 브랜드 컨설팅회사인 인터브랜드와 비즈니스위크가 지난 8월 공동 조사한 '전세계 기업 브랜드 가치'에 따르면 코카콜라가 6백96억달러(약 83조5천2백억원)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국내 1위 브랜드의 가치 평가액이 세계 최고 브랜드의 1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한국 기업의 브랜드 경쟁력이 뒤처진 셈이다.
더군다나 올해 첫 실시된 국가 브랜드 가치 조사에서도 한국은 조사 대상 16개국 가운데 9위에 그쳤다.
한국경제신문은 한국의 브랜드 경쟁력 강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했다.
[ 참석자 ]
박성수 <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실 상무 >
나운봉 < 신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신철호 < 산업정책연구원장.성신여대 교수 >
이병호 <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
안현실 < 한국경제신문 전문위원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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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최근 국내 기업의 해외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브랜드 경쟁력이 기업 가치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병호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세계 시장의 통합화가 가속화되면서 기술력은 평준화되는 추세입니다.
특히 내구 소비재는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기술이나 기능에 차이가 거의 없지요.
그런데도 선진국과 개도국 기업간 가격 차이는 여전히 큽니다.
고급 화장품을 예로 들면 선진국 기업의 제품 값이 개도국 기업보다 수십배 비싼 경우가 허다하지요.
브랜드 파워가 제품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나운봉 신라대 교수 =글로벌 시장이 형성되고 정보 확산 속도가 빨라지면서 품질만으로 소비자를 붙들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소비자는 제품 자체보다 기업 가치와 제품 이미지를 보기 때문이지요.
기업 가치와 제품 이미지를 아우르는 것이 바로 브랜드입니다.
제품의 품질은 조금 나빠지더라도 만회가 가능하지만 브랜드 가치나 이미지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쌓아올리기까지 여간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기업들이 브랜드 가치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필요에 맞춰 다양한 투자를 서둘러야 합니다.
사회 =세계 시장에서 국내 브랜드 경쟁력은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국내 기업들은 브랜드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요.
박성수 삼성전자 상무 =최근 브랜드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바뀌고는 있습니다.
학계에서도 브랜드 가치 평가모델을 만들어 기업을 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요.
그러나 아직도 브랜드를 단순한 '상표' 정도로만 생각하는 기업이 적지 않습니다.
브랜드는 제품명은 물론 품질과 기술력, 기업의 마케팅 능력, 소비자 인지도와 선호도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기업 경쟁력이 곧 브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브랜드 전략->실행->모니터링'으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을 4년째 가동하고 있습니다.
전세계 50여개국에서 브랜드 효과를 추적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고요.
이런 브랜드 관리시스템은 선진 기업들에선 이미 일반화돼 있습니다.
선진 기업들과 세계 시장을 놓고 경쟁하기 위해선 기술력이나 품질 향상에 못지않게 브랜드 파워를 구축해 나가는 작업이 매우 중요합니다.
신철호 산업정책연구원장 =눈에 보이지 않는 회사 가치를 차별화해 선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기업 자체의 브랜드화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 가운데 마케팅실과 상품기획실 브랜드실을 별도로 운영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브랜드 경쟁력은 장기적인 투자의 결실입니다.
개별 기업과 산업별로 차별화된 브랜드 강화전략을 마련해 나가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나 교수 =브랜드 전략은 '삼성'이나 '소니'처럼 회사명을 통합 브랜드로 활용하는 방법과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사의 '말보로'처럼 특정 제품 브랜드를 앞세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브랜드 경쟁력이 선진국보다 뒤떨어지는 국내 기업들은 우선 회사 브랜드로 해외 시장 기반을 닦은 뒤 개별 제품이나 지역별 브랜드 전략을 구사하는게 바람직합니다.
사회 =선진 기업들의 브랜드 관리전략과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신 원장 =미국 생활용품회사인 P&G는 개별 제품마다 각각 다른 브랜드를 사용하는데 선진 기업은 일반적으로 P&G와 같이 제품별로 브랜드를 씁니다.
반면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은 모든 제품에서 기업명을 브랜드로 활용하고 있지요.
시장과 제품 업종 등의 특성에 따라 브랜드 확산 전략을 차별화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습니다.
나 교수 =외국 기업들은 대부분 지속적인 브랜드 전략을 선호합니다.
말보로를 예로 들면 청바지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모델을 고집하는 식이지요.
반복적인 이미지 주입을 통해 소비자가 브랜드를 기억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선진 기업들은 또 제품은 물론 직원에게서도 동일한 브랜드 이미지를 느끼도록 마케팅 전략을 통일하고 있습니다.
박 상무 =오랫동안 브랜드 정체성을 가꿔 나가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시장 환경 변화와 지역별 특성에 따라 전략을 적절히 바꿔가는 기업도 있습니다.
1백여년 전 첫선을 보인 '아이보리' 비누는 지금까지도 순수하고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지요.
반면 코카콜라는 원래 건강음료였지만 청량음료로 변신해 성공했습니다.
버지니아 슬림스도 미국 시장에선 여성용 담배로 시판됐지만 한국 시장에 상륙할 때는 비즈니스 맨을 위한 고급 담배로 둔갑했습니다.
이 국장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품질 향상을 통한 제품과 기업 이미지 관리가 관건입니다.
특히 중소기업이 선진 기업과 맞서려면 기술 품질 디자인 등 기초 체력을 다진 뒤 이를 마케팅에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사회 =대표적 무형자산인 브랜드 가치가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선 어떻게 반영되고 있습니까.
신 원장 =특허권을 다루는 변리사들이 브랜드 가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업간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도 손해액을 산정할 때 브랜드 가치 하락분을 포함시키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지요.
나 교수 =필립모리스가 한때 경영위기에 처해 M&A 시장에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유형자산 가치가 2백억달러로 평가됐는데 놀랍게도 브랜드 가치도 똑같이 2백억달러로 산정됐습니다.
결국 M&A 희망업체가 인수를 포기했지요.
브랜드 가치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영국에선 기업 재무제표에 브랜드 등 무형자산을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브랜드 가치가 기업 전체 가치의 40~50%를 차지하는 곳도 있지요.
사회 =기업 브랜드 제가치를 인정받으려면 국가 브랜드 파워가 뒷받침돼야 하겠지요.
나 교수 =물론입니다.
해외 시장에서 기업과 국가의 브랜드가 확산되는 데는 단계가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 시장 공략 초창기에 모든 제품을 '일본산(Made in Japan)'으로 포장해 국가 이미지부터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 뒤 소니 도요타 등 특정 기업과 제품 브랜드로 시장을 확대해 나갔지요.
이 국장 =정부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주요 상품들을 세계 시장에서도 최고급으로 통하는 일류상품으로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매년 11월 브랜드 주간을 설정해 브랜드가치 제고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제대로 인식시키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지요.
내년부터는 자가브랜드 측정 모델을 개발 보급해서 개별 기업들이 스스로 자기 기업의 브랜드 가치 수준을 확인하고 모자란 부분을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입니다.
2년전부터 산업정책연구원에 용역을 줘서 국내 주요 기업들의 브랜드 가치를 계량화하고 매년 그 내용을 발표하고 있는 것은 기업들에 브랜드 파워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더욱 분발하도록 자극을 주자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개별 기업만의 노력으로 브랜드 파워를 향상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브랜드 파워를 총체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작업의 하나로 올해부터 국가브랜드 가치를 새로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조사 결과 한국의 국가브랜드가 경쟁국들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부와 기업, 국민이 힘을 모아 국가 브랜드파워를 향상시키기 위한 일에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박 상무 =국가 브랜드 실체를 만들어가는 작업도 긴요합니다.
국가를 상징할 수 있는 것에는 역사.유물이나 대형 상징물, 문화, 대표 상품 등이 있지요.
선진국은 이들 상징물을 외국인이 쉽게 접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국가 브랜드와 이미지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을 만들어내는 일을 서둘러야 합니다.
정리=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