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영국인들은 쇠퇴에 익숙하다. 그들은 요즘 자신들의 나라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대단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지적 자부심'(intellectual pretensions)이다. 영국인들은 그들 나라의 영향력 감소에도 불구,창의력 문화 두뇌만큼은 다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자부심도 이미 환상일 수 있다. 설령 지금은 아니라도 조만간 환상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차세대의 두뇌를 배출하는 영국 대학이 황폐화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대학들은 몰락하는데,정부는 여전히 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재정을 위한 장기적 대책마련도 연기된 상태다. 지난 40여년 간에 걸쳐 노동당과 보수당을 오간 정권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고등교육이 소수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10대의 대학진학률을 1960년 5%에서 현재는 35% 수준 까지 끌어올렸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18∼30세의 50% 이상이 고등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영국 정치인들은 대학팽창에 걸맞은 자금지원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추가비용을 들이지 않고 학생수를 늘리기 위해 납부금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국영기업들이 더 많은 자본을 조달하고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민영화하던 시기에 대학들은 거꾸로 중앙집중화한 국가관리 체제로 들어간 셈이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자본조달도,시장요구도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 결과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학생 1인당 지출액은 꾸준히 감소했다. 때문에 89년 이후 대학생 수는 90% 증가했지만,인플레 등을 감안한 학생 1인당 납부액은 37% 감소했다. 옥스퍼드대의 경우 학생 1인당 대학수입이 미국의 하버드대와 예일대의 40% 정도다. 대학재정이 악화되면서 교수 한명당 학생수는 10년전 9 대 1에서 지금은 18 대 1로 늘어났다. 교수들의 임금도 민간기업은 물론 공공기업보다 낮아져 대학강사 초임이 경찰관 초임과 거의 같아졌다. 뿐만 아니다. 대학건물과 시설,장비들도 노쇠화하고 있다. 물론 대학재정은 전체적으로 적자상태다. 대학총학장협의체인 UUK는 대학운영이 제대로 되려면 현재 매년 받고 있는 재정지원 80억파운드(약 16조원)에 앞으로 3년간 99억4천만파운드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같은 주장을 일축한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영국 대학들은 아직도 수용능력 이상으로 외국 학생들을 유치하고 있다. 따라서 최고수준의 연구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영국은 60년대에 화학 물리학 생리학 의학분야에서 11개,70년대에는 13개의 노벨상을 받았다. 이 숫자는 80년대 4개,90년대 2개로 급감했다. 특히 최근 노벨상을 받은 영국학자 중 대학에서 연구하는 사람은 없다. 또 전세계 1천2백여명의 저명한 과학자들 가운데 영국에 있는 사람은 80명에 그쳐 미국(7백명)과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영국인들의 마지막 보루인 '지적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대학교육 회생을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정리=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 -------------------------------------------------------------- ◇이 글은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11월16일)에 실린 'Britian's universities,on the road to ruin'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