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불안의 징후는 기업 개인 등 경제주체들의 체감경기 급랭조짐뿐 아니라 장기채권 금리가 연일 연중 최저치 행진을 거듭하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기채권 금리는 미래의 자금수요와 위험요인을 반영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하루짜리 콜금리와 5년만기 국고채 금리의 격차가 1.1%포인트에 불과할 만큼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두드러진다. 여기에다 정부가 폭증하는 가계대출을 옥죄기 위한 대책에 착수, 내수경기 위축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주식시장은 기대에 못미치고 부동산 열기도 한풀 꺾였다. 채권 외엔 달리 투자할 대상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6개월미만 단기 금융상품에 3백50조원 이상 잠겨 있을 만큼 시장의 호흡이 짧아졌다. 때문에 실물과 금융의 연관관계가 느슨해지는 '지표경기 따로, 금리 따로'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다 "왠지 불안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장.단기 금리차 실종 시중 유동성 수위를 보여주는 장기채권 금리가 연일 최저기록을 갈아치우는 것은 그만큼 돈 굴릴 곳이 없다는 증거다. 최근 금융시장에선 사실상 '기간 불문(不問)'의 저금리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하루짜리 콜금리는 6개월째 연 4.25%로 묶여 있다. 반면 회사채(3년만기, AA-등급) 금리는 콜금리 인상 직전(5월6일) 연 7.07%에서 연 5.81%(12일)로 급락했다. 이에 따라 장.단기 금리격차가 5월초 3.07%포인트의 절반수준인 1.56%포인트로 좁혀졌다. 국고채만 놓고 보면 금리격차 축소현상이 더욱 확연하다. 1년만기 국고채.통안채 금리가 연 5.0%여서 만기가 4년이나 더 긴 5년만기 국고채(연 5.39%)와 불과 0.39%포인트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단기 채권은 콜금리에 막혀 더 내려가기 어려운 반면 장기 채권일수록 금리 하락세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 따로 노는 지표경기와 금리 6%안팎의 경제성장률, 두자릿수 수출증가율 등 외견상 지표경기는 손색이 없다. 내년에도 5%대 성장이 예상되고 정부나 한은은 기업의 투자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채권금리는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내년에도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물과 금리의 괴리현상은 한국 경제를 둘러싼 각종 변수들이 한결같이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고 불확실하다는데 원인이 있다.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불투명한 선진국 경기전망, 이라크 사태 등이 모두 그렇다. 기업들이 상반기 사상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기피하고 감량경영에 주력하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다 한국은행의 통화관리도 다소 빠듯해졌다. 한은은 콜금리 인상이 무산됨에 따라 일단 은행 지준 등 금융권의 단기유동성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방만한 자금운용을 막아 가계대출을 억제하는 간접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 불확실성 제거돼야 방향 잡을 듯 시장에선 이제 금리가 내려갈 만큼 내려 더 낮아지긴 어렵다고 보고있다. 그렇다고 대선, 미.이라크 전쟁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어 당분간 금리가 다시 급등하지도 않는 소강국면을 예상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채권딜러는 "콜금리가 동결됐고 CD(양도성예금증서)가 연 4.9%대여서 채권금리 하락세는 거의 한계에 왔다"고 말했다. 미국계 투자회사인 씨티살로먼스미스바니도 "채권시장의 추가 랠리(금리 하락)는 없을 것"이라며 "한은이 콜금리를 내리거나 경기지표가 급속히 악화되지 않는 한 국고채(3년만기) 금리가 연 5% 밑으로 내려가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