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을 겪는 벤처기업들의 활로를 찾는 방안의 하나로 기업인수.합병(M&A)이 제시되고 있으나 벤처업체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수단 미비, 각종 규제 등으로 상담이 이뤄진 사례중 거래가 성사된 것은 10% 미만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최근 시중에 불거지고 있는 '벤처대란'을 예방하려면 M&A 활성화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기술거래소는 서울지역 벤처기업 및 M&A 관련기관 임직원 3백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이같이 분석됐다고 13일 발표했다.


설문조사결과 기업인수.합병이 현재 벤처기업들이 겪고 있는 유동성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한계에 봉착한 벤처기업들에 새로운 활로를 찾아줄 대안으로 꼽혔다.


이를 통해 투자금 회수가 활발해지면 벤처기업에 대한 재투자로 이어져 투자자금의 선순환구조가 정착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제도미비 등으로 M&A를 시도한 사례중 성사된 것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기업인수를 위한 협상이 진행된 업체들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실제 매물로 나와있는 업체중 상당수는 아예 상담조차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적절한 기업가치평가 기준 없는게 큰 문제


기업인수.합병을 가로막는 장애물로는 합리적인 적절한 기업가치평가 기준 미비, 주선기관의 부재, 부정적인 인식, 복잡한 관련법률 및 절차, 기업간 불신, 비현실적인 세제 등이 지적됐다.


이 중에서도 합리적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김경환 기술거래소 본부장은 "미국의 경우 M&A가 기업공개와 더불어 최대 투자회수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고 시장규모도 증권거래소시장의 12배에 달할 정도로 활성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국내에는 인수대상기업을 평가할,공신력 있는 기관이 드물다"며 "특히 자산규모가 작은 벤처기업들의 경우 로펌이나 회계법인의 관심권 밖에 있는 만큼 적정한 가치평가기준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M&A 절차를 진행중인 A사의 경우도 제대로 가치평가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00년 설립된 이 회사는 자본 일부가 잠식됐지만 지속적인 연구개발투자로 시제품을 양산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자금 압박을 덜기 위해 B사와의 M&A를 추진했다.


하지만 A사는 현재의 법제화된 기업가치 평가방법 때문에 딜레마에 빠졌다.


현재 비상장(등록) 기업들은 가치평가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이 정한 비상장주식 평가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순자산가치를 발행주식총수로 나눠 가치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이에 따를 경우 연구개발에 집중투자한 후 1∼2년 정도 매출이 별로 없는 A사는 기업가치(주당 자산가치)가 마이너스로 나온다.


이 회사의 재무담당이사는 "현재 기업가치산정기준은 회사의 지식재산권이나 성장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한결의 안식 변호사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은 세법상 과세기준일 뿐 기업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안 변호사는 "기업가치를 법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시장에서 평가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먼저 만들고 이를 확산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현실과 괴리된 각종 규정들


금융감독원 등은 불건전한 우회등록(백도어 리스팅)을 막기 위해 코스닥등록기업과 비등록기업간의 인수.합병조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비등록기업이 등록기업에 흡수.합병되기 위해서는 자본상태, 경영성과, 부채비율, 감사인의 의결, 최대주주 등의 소유주식비율제한 등 사실상 코스닥 등록심사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시너지효과가 기대되는 비등록기업의 M&A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 컨설팅회사 대표는 "외환위기 이후 M&A에 대한 시각전환과 함께 관련법이 정비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라며 "그러나 벤처비리 등이 불거질 때마다 여론에 밀려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상장기업 위주의 M&A 제도와 벤처기업의 현실에 맞지 않는 세제 등도 장애요인으로 꼽혔다.


특히 현행 세법하에 시행되는 M&A는 합병시 이월결손금 문제를 비롯해 △합병시 청산소득 공제 △의제배당 비과세 △주식맞교환(스톡스와프)시 양도소득세 부과 등 갖가지 문제로 벤처기업들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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