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성공 王道 없어요" .. 잘나가는 프랜차이즈 사장들의 성공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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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수 한국창업개발연구원장이 "프랜차이즈 창업열전"을 펴냈다.
이 책에는 월급쟁이나 밑바닥 생활을 하다가 프랜차이즈 본사를 창업,특정 업종에서 뿌리를 내리기까지의 성공 스토리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본사 또는 가맹점 창업을 꿈꾸는 수많은 샐러리맨들에게 열정과 의욕을 줄 수 있는 본사 사장들의 성공사례와 사업철학 등을 소개한다.
BHC 강성모 사장
강 사장은 앳된 얼굴 탓에 30대 중반의 청년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40줄에 접어든 중년의 야심가다.
그의 사업철학은 "3무정신"에서 뚜렷이 엿볼 수 있다.
3무란 사장전용차,개인비서,골프클럽이 없다는 뜻이다.
3무정신에는 겸양과 나눔의 철학이 담겨 있다.
현재 5백개인 가맹점을 최대 2천5백개까지 늘리되 이중 5백개는 불우한 이웃에게 지원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97년6월 샐러리맨 생활을 청산하고 비교적 짧은 기간에 사업을 반석에 올려놓았다.
비결은 열정이다.
그의 수면시간은 하루 4시간을 넘지 않는다.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을 때면 며칠밤을 꼬박 지새우기 일쑤다.
수면부족으로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주위에서 걱정할 정도다.
일찌감치 해외에 진출,미국 일본 중국 등 5개국에 9개 지사를 설립해 BHC 브랜드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후에버라는 커피전문점 브랜드를 만들어 스타벅스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별난 매운탕 배대열 사장
배 사장의 인생 역정은 그가 만든 브랜드 만큼이나 유별나다.
그의 고향은 경남의 변방인 하동에서도 60리가 떨어진 북천의 가난한 마을이다.
군복무를 마칠 때까지 그의 학력은 중졸이 전부.
제대 후 리어카 행상을 하며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한 때가 28세였다.
졸업한 뒤 취직은 포기했다.
나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작한게 식당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일이었다.
타고난 성실성으로 고객식당이 2천개까지 늘어났다.
돈이 모이면서 직접 식당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식자재를 5년동안 공급하면서 잘되는 식당과 그렇지 않은 식당의 차이를 깨달은 것.
배씨는 별난매운탕의 직영 1호점을 경기도 하남시 변두리인 동서울골프장 입구에 차렸다.
외딴 곳인데도 손님이 줄을 이었다.
별난 맛 때문이었다.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꽃은 깊은 산중에 홀로 피어 있어도 벌이 찾아온다는 것.
96년부터 고객들의 간청으로 가맹점을 늘리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 가맹점수는 2백50개나 된다.
직영 1호점 바로 옆에 메뉴를 달리한 식당 2개를 더 열어 이곳 3개 식당에서만 연간 매출 25억원을 올리고 있다.
프랜드리베이비 황인규 사장
2000년 봄까지 황 사장은 그저 평범한 샐리리맨이었다.
그의 직장생활은 영업맨으로 일관했다.
뛰어난 실적 덕분에 2000년 초 회사(삼성생명 강남지점)는 연봉 1억원을 제시했다.
이를 떨치고 퇴직,자기 사업에 매달려 현재 가맹점이 40여개로 늘어났다.
황 사장이 자기 사업을 꿈꾸기 시작한 계기는 97년의 외환위기.
선배 동료들이 떠밀려 일터를 떠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황씨는 9개월간 준비 끝에 98년9월 사울 강동구 둔촌동에 10평짜리 유아용품 전문점인 프랜드리베이비 직영점을 차렸다.
첫달 매출이 1백70만원.
종업원 월급에도 모자랐다.
그러나 선물공세 안부전화 등으로 판촉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그해 연말에는 한달 매출이 2천5백만원까지 올라갔다.
하루 최고 매출 기록은 1천70만원.
가맹점 사장들 중에는 고객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이 많다.
대기업에서 나오는 유아용품에 비해 결코 품질이 떨어지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고객들이다.
대도시에서는 구당 1개씩,중소도시에서는 1개씩으로 가맹점 영업구역을 한정해 전국에 1백20개 정도 가맹점을 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