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로직 '2천억대 사기'] '복잡한 유통' 교묘히 이용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정보기술(IT)업계 초유의 대형 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알에프(RF)로직 사건은 국내 IT유통체계의 허점과 기업들의 관행적인 매출부풀리기 등이 맞물려 발생한 전형적인 횡령사건이다.
이번 사건은 유통업계는 물론 국내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업계에도 치명타를 안겨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IT산업이 더욱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또 가공매출로 실적을 부풀려온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남에 따라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도덕성이 도마위에 오르게 됐고 투자자들의 피해도 불가피해졌다.
◆ 사건 개요
이번 사건은 IT유통업체인 RF로직이 대주주로 있는 소프트윈과 에이콘의 부도로 드러났다.
양사는 지난달 30일과 31일 신한은행 강남기업금융지점과 역삼기업금융지점에 만기도래한 27억원과 41억원 가량의 당좌수표와 약속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됐다.
RF로직은 이들 자회사를 이용,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뱅크코리아 등 IT업체들을 무작위로 끌어들여 서버 노트북 네트워크장비 소프트웨어 등을 유통하고서도 대금을 결제하지 않고 고의 부도를 냈다.
RF로직은 2중, 3중의 단계를 거치는 IT유통체계의 허점을 십분 활용했다.
노트북PC의 경우 HP에서 직접 구매하지 않고 국내 최대 IT유통업체인 소프트뱅크코리아를 끌어들여 자회사인 소프트윈의 매출을 부풀린 뒤 용산전자상가 등 PC대리점에 싼값에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버나 스토리지 네트워크장비 등도 비슷한 단계를 거쳤다.
업계 관계자는 "제품 거래규모가 10억원만 넘어도 중간유통과정에 5∼6개 안팎의 업체들이 끼어들어 이른바 '줄서기'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동일한 물건이 여러 업체의 어음매출로 잡히는게 관행화돼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고가 터질 경우 피해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피해 규모
지금까지 알려진 피해규모는 1천5백억원 안팎이다.
그러나 RF로직이 발행한 어음중 80% 가량의 만기일이 이달말에서 내년 5월까지인 것으로 알려져 피해규모가 최대 5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직원의 연루설이 나돌고 있는 소프트뱅크코리아는 피해금액이 3백억∼4백억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6백억원 규모로 늘어날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코스닥 등록업체인 한국하이네트 콤텔시스템 등도 수십억원의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고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정확한 피해금액 파악을 위해 조사중이다.
◆ 업계 파장
IT유통업계가 당장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RF로직뿐 아니라 기존 유통관행에 비춰볼 때 제2, 제3의 RF로직 사건이 불거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업체의 한 관계자는 "비정상적인 유통체계가 만연된 상황이어서 사고 재발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며 "IT 유통체계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업체들에도 직격탄이 우려된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상품을 직접 판매하지 않고 다양한 유통채널을 통해 영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망 마비는 곧바로 판매 부진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