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장영자 사건 때나 IMF 한파 등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조흥은행 고객들의 예금이 신한은행으로 이탈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이제 20년 된 은행이 1백5년 된 은행을 먹는다고 하니 너무 기가 막힐 뿐이다." 요즘 조흥은행 행내망 게시판에는 이런 종류의 글이 하루에도 수백건씩 오르고 있다. 한결같이 신한은행과의 합병에 반대하는 내용들이다. 조흥은행 직원들이 이처럼 신한은행측의 인수 추진에 분개하는 것은 두 은행간 해묵은 구원(舊怨)이 작용하고 있다는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두 은행의 관계는 지난 82년 신한은행의 창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한은행은 은행 설립을 위해 당시 조흥은행 전산개발팀의 핵심인력 30명을 한꺼번에 스카우트했다. 신한과 조흥은행이 흡사한 전산환경을 갖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두 은행은 IBM계열 전산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는 다른 은행들과 달리 유니시스 계열의 시스템을 쓰고 있다. 'XXX(점포번호)-XX(계정과목)-XXXXXX(고객번호)'로 구성되는 두 은행 계좌번호 체계도 비슷하다. 은행가에선 '전산환경이 유사하다는 점도 신한은행이 조흥은행 인수에 나선 요인중 하나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산 핵심인력을 빼앗기면서 생긴 조흥은행측의 신한은행에 대한 적대감은 이후 더 깊어졌다.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모르지만 신한은행이 신설하는 점포중 조흥은행 점포와 인접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포공항 영업점의 경우 조흥 직원들이 하루아침에 몽땅 신한은행 옷으로 갈아입은 경우까지 있었다는게 조흥은행 관계자의 설명이다. 조흥은행의 한 간부는 "당시 거액예금을 둘러싸고 경합이 붙을 경우 상업이나 한일 제일 등이 차지하면 그냥 넘어갔지만 신한은행에 뺏기면 밤잠을 못잘 정도로 분을 삭여야 했다"고 들려줬다. 다른 간부는 "자존심을 구겨버린 조흥은행 직원들이 할수 있는 최선의 일은 '실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임직원들의 단결을 호소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