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타운 동대문시장. 밤마다 수만명의 젊은이들과 지방상인들이 몰려와 '패션축제'를 즐긴다. 격정적 음악과 번쩍이는 네온사인. 온몸이 꿈틀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동대문만의 매력에 외국인들도 탄성을 지른다. 동대문은 생산과 판매가 함께 이뤄지는 패션 명소. 최신 유행 옷을 고작 몇천원,몇만원이면 살 수 있다. 값에 비하면 믿기지 않을 만큼 품질도 좋다. 동대문 28개 상가,3만여개 점포가 올리는 수출 실적은 연간 10억달러가 넘는다. 일요일인 20일 밤 9시.동대문 '동편제'(도매상권) 주차장에 대형 버스가 줄지어 나타나 상인들을 내려놓는다. 지방에서 올라온 소매상인들이다. 교통경찰의 호루라기 소리. 요란한 댄스음악. "비켜∼". '대봉'(상품을 담은 큰 비닐봉투)을 옮기는 '짐수레꾼'이 소리를 지른다. 버스 앞에 물건을 내려놓고 담배를 빼물더니 한마디 한다. "형편없어.안좋다 안좋다 해도 이렇게 안좋은 적은 없었어.지방상인들 헤아려봐.지난해의 3분의 1밖에 안돼." 비슷한 시각 길 건너 '서편제'(서쪽 소매상권) 두타 앞. 대형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광장 오른편에서 일본 유명 스타들의 의상을 연출한 '코스프레'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젊은이들의 탄성이 밤하늘에 퍼진다. 인근 헬로APM 광장엔 경품으로 나온 1억원짜리 금괴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문을 연 이 상가는 손님을 끌기 위해 커다란 금괴를 경품으로 내놓았다. 패션몰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화려한 겉모습과는 딴판이다. 우선 매출이 계속 줄고 있다. P패션몰 여성복매장의 한 상인은 "월드컵 때 공치고 여름장사는 수해로 망치고 간절기옷 조금 파는가 싶더니 벌써 겨울옷 내놔야 할 판"이라고 투덜댄다. 매출이 줄자 지난해 4백만∼5백만원 하던 소매상권 1층 점포 월세가 올들어 3백50만∼4백만원대로 떨어졌다. 권리금은 1층 노른자위 몇곳을 제외하곤 자취를 감췄다. 도매상권도 마찬가지. 매출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더 큰 문제는 생산기반이 중국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X시장은 중국옷 파는 곳"이란 소문이 났을 정도다. 늦은 새벽 이곳에서 유통되는 옷의 절반 이상은 중국산으로 알려져 있다. D쇼핑몰에서 한복가게를 운영하는 김영진 사장은 "한복시장까지 중국산이 침투한 상태"라고 말한다. 할인점.아울렛의 저가공세를 막아내는 것도 버거운 숙제다. 동대문 쇼핑몰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헬로APM(점포수 1천8백개)이 문을 열었고 10여개 소매 쇼핑몰이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 굿모닝시티(4천개),라모도(2천4백개),패션TV(2천개) 등이 2년내 개점을 목표로 경쟁적으로 분양활동을 벌이고 있다. 동부주차장과 기동대 자리,흥인·덕운시장,우노꼬레 자리,누존 인근,담배인삼공사빌딩 터 등에도 쇼핑몰이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이 많은 점포를 채우는 문제도 걱정거리다. 그래도 동대문에 희망을 거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인터넷쇼핑몰 동대문닷컴의 전찬오 이사는 "동대문은 수만가지 패션상품이 경쟁하는 패션실험실"이라며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저가 의류에서 탈피해 고급 브랜드 패션을 지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우관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는 "동대문 패션의 품질과 가격대를 끌어올려 국제경쟁력을 높여야만 세계적인 패션타운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