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무기(裵茂基.63) 울산대 총장은 한국에서 경제개발이 본격 추진된 1970년대 이후의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학문적 해석을 통해 국내 노동경제학을 새롭게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21회 다산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배 총장은 11일 시상식에서 발표할 특별강연 원고를 통해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주체는 경영자"라며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동반자 관계로 바꾸기 위해 최고경영자가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총장의 특별강연 내용을 요약한다. ------------------------------------------------------------------------------ 한국의 노사관계는 강력한 대책과 관계주체들의 분발을 요구하는 위기상황에 와 있다.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겪었던 노사분쟁과 사회비용은 경제사회 발전과정에서의 통과의례였다고 볼 수 있다. 큰 고통과 비용이 뒤따랐지만 그것 자체가 위기는 아니었다. 전국적인 노조 조직률이 11% 남짓에 불과하지만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노조는 아직도 개발시대의 국가적 규제에 대항하던 노동운동 노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조가 부딪치는 것이 '국가적 통제'인지 아니면 '피할 수 없고 종국적으로 이길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시장의 힘'인지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 내에서 동반자적 노사관계를 추구하기보다는 노조의 힘(교섭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운동노선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노동운동의 새로운 이념에 대한 치열한 반성 없이 혼미에 빠져 있다. 노동운동의 위기다. 사용자는 어떤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과잉인력을 어느 정도 정리했고 경영의 투명성도 과거보다 높였다. 그러나 노사관계를 동반자 관계로 바꿀 것을 요구하면서도 최고경영자가 주요 경영정책으로서 노사관계를 새롭게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나 투자는 매우 부족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제조업 시설을 중국 등으로 이전한다든지 비정규직 근로자 채용을 늘려 대응할 뿐 노사관계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사용자의 위기다. 정부는 어떤가. 노사관계에 대한 정책방향에서부터 철저한 인식이 부족했다. 일회성의 노사단합대회, 화합모임, 노사화합선언 등에 치중해 왔다. 캠페인적 성격의 정책사업이 주를 이루다보니 노사 양측이 신뢰를 쌓아가도록 시스템적으로 유도하는 노력은 부족했다. 국제기준에 근접할 수 있도록 노동관계법을 개정해야 하는데도 의지 부족과 노사단체의 저항으로 거의 손을 놓고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정부 활동에 걸림돌이 되거나 제대로 일을 추진하지 못할 때 변명의 구실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터인지 이해 당사자간에 '합의'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인양 착각하는 인식이 번지고 있다. 노사문제는 당사자들의 이해와 국민의 이해가 상반되거나 다를 수 있다. 잘 되지도 않을 합의를 추구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한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지향하는 노사관계의 상(像)을 생각해 보자. 철도 체신 교원 항운노조 등과 같이 특성상 산별노조 형태가 원천적으로 적합한 경우를 제외하면 한국에서는 기업별 노조가 원형이었다. 기업별 노조에서 노사 모두 공유할 수 있는 가치는 첫째로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고 둘째로 종업원의 직장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같은 무게의 중요성을 가져야 한다. 노조는 경영의 파트너로서 그 지위와 역할이 확고히 보장돼야 한다. 종업원을 존중하고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는 관계가 유지돼야 한다. 경영정보를 공유하고 노조의 참여를 장려하며 종업원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관계가 돼야 한다. 임금이나 근로조건 등에 관한 단체교섭이 있을 때 섣부른 절충안을 도출하기보다 상대방의 요구내용과 애로사항을 충분히 배려하는 교섭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법령부터 정비해야 한다. 단체협약 체결을 목표로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분쟁조정 등의 절차만을 규정한 노동법 체계를 뛰어넘어 우리가 바라는 노사관계를 이룰 수 있는 쪽으로 적극 유도하는 법이 필요하다. 노사 동반자 관계를 조정하는 법으로 예컨대 '노사관계개선촉진법'이나 '노사동반자관계조성촉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노사관계 개선사업에 투자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노사관계 개선을 위해 경영자가 주도하되 노조도 함께 협력하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 현행법에 투영돼 있는 근로자상은 1950년대의 가난하고 무력하고 육체적 힘 외에는 별로 갖춘 것이 없어 사용자의 '착취' 대상이 됐던, 일본 노동법 학자들이 주장하는 소위 '공장노동자'였다. 그러나 오늘날 또는 가까운 미래의 근로자상은 자신이 팔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다. 사용자와 거의 대등한 교섭능력을 가지고 있어 결코 무력하지도 않다. 노동관계법을 개정할 때 국제적인 기준이나 관례에 맞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정당한 해고가 인정되는 요건도 우리나라가 국제관례보다 강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제조업체 중에는 신규채용을 몇 년 동안 하지 않아 종업원의 평균연령이 40대 중반으로 높아져도 인력조정을 거의 할 수 없는 기업들이 많다. 반면 선진국 기업에서는 직무능력 하위자를 매년 5-10%씩 퇴출시켜 경쟁력 있는 인력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근로자의 고용보호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노사공익으로 이루어지는 협의기구에도 문제가 있다. 노동문제는 공익대표가 주도하여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노사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더 적절하다. 정부는 법 집행을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 노사관계가 경제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 약력 ] 1939년 4월2일 경남 창원 출생 부산고(1958) 서울대 경제학 학사(1962) 석사(1967) 미국 뉴욕시티대 박사(75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노동연구원장,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현 울산대 총장 [ 논문 및 저술 ] 기업의 해고행태 이론(A Theory of the Firm on Layoff Behavior, 박사학위 논문, 1975) 한국 노동경제의 구조변화(1982) 한국 경제의 전환점(The Turning Point in The Korean Economy, 1982) 노동경제학(대학교재, 1984) 한국의 수요부족실업과 비수요부족실업(1985) 한국 노사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1995) 한국 노동자의 인식구조(1998)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