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절하)과 고액권 지폐 발행 문제를 검토할 때가 됐다"는 발언으로 충격을 던졌다. 1백원이나 1천원을 1원으로 평가 절하하겠다는 것으로 1달러당 1천원대의 '싸구려 통화'에서 벗어나 한국경제의 대외 이미지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현실에 맞게 화폐단위를 조정해 화폐이용을 편하게 하자는 것이 박 총재의 논리다. 박 총재의 발언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케이블·위성 채널인 히스토리 채널은 40년 전 군사정권이 단행했던 화폐개혁의 동기와 과정,그리고 결과를 살펴보는 다큐멘터리 '검은 돈을 찾아라! 62년 화폐개혁'을 10일 밤 12시에 방송한다. 이 프로그램은 정운영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가 진행한다. 지난 62년 6월10일,전국에 '긴급통화조치법'이 공포됐다. 화폐개혁이었다. 국민들은 단 하루 동안 동사무소나 은행에서 환을 원으로 바꿔야 했다. 그러나 돈을 들고 은행을 찾은 사람들은 당황했다. 5백원 이상의 돈은 1년 이상 정기예금으로 봉쇄당해야 했던 것.국가경제발전을 위한 산업자금으로 예치시킨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군사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실행을 위해 돈이 필요했다. 미국의 원조는 줄고 있었고 외국은 가난한 나라에 돈을 빌려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의 힘으로,내자조달로 국가 경제를 세워보자'는 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군사정부의 화폐개혁은 바로 미국의 반대에 부딪혔다. 처음부터 박 전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미국은 자신들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화폐개혁을 단행하자 발끈했다. 국민의 돈을 봉쇄시킨다는 것 자체가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라는 의심도 화폐개혁 반대에 불을 지폈다. 원조 중단과 단교를 거론하며 반대하는 미국에 군사정부는 굴복하고 말았다. 6월30일 봉쇄예금의 일부를 해제했고 7월에는 완전히 없었던 일로 돌아갔다. 이 일은 군사정부의 경제개발정책이 '내자 동원을 통한 민족경제권 구성'에서 '외자를 중심으로 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바뀌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