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동 전문기자의 '유통 나들목'] 술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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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한한 영국 위스키업체 애들링턴 그룹의 이안 굿 회장은 한국 위스키 시장의 급성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이 아니다.
세계 유수의 위스키업체 최고경영자들이 한국 술 시장을 돌아본 뒤의 반응은 한결같다.
한마디로 '엄청난 황금시장'이라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선진국에선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추세가 뚜렷한 반면 한국에서는 갈수록 음주인구가 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음주자 비율은 지난 92년 53%에서 2002년 70%로 10년새 17%포인트 높아졌다.
지난해에는 미국의 음주인구 비율 66%를 뛰어넘어 술에 관한 한 미국에 버금가는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지난 한햇동안 우리나라 성인 한 사람은 소주 79병과 맥주 1백19병,양주 1.4병을 마셨다.
음주왕국이 된 데는 여성도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10년 전에 비해 남성 음주율은 80%에서 83%로 별 차이가 없지만 여성 음주율은 26%에서 57%로 2배 이상 뛰었다.
술 마시는 이유를 한마디로 단정할 수는 없다.
기뻐도 마시고 슬퍼도 마신다.
집단의식이 강한 민족성 탓에 회식자리도 잦다.
접대문화도 큰 몫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삶의 질이 뒷걸음치면서 술 마시는 사람도 늘었다는 사실이다.
삶의 질이 후퇴한다는 건 지갑이 얇아진다는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나를 둘러싼 물질적·정신적 환경이 총체적으로 나빠졌다는 의미다.
우선 한국사회는 '가학적인' 사회다.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새디즘'이 보편화된 사회다.
예컨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직장 상사가 아랫사람에게,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에 참기 힘든 스트레스를 주면서도 그것에 둔감한 사회구조가 정착됐다.
특히 지배계층의 몸에 밴 도덕불감증은 우리 사회의 행복지수를 밑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최근 두 번에 걸친 총리지명자 청문회에서 나타난 '기득권자의 모럴해저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물질적으로도 나아진 게 없다.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해도 개인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초라하다.
국제통화기금(IMF) 환란 탈출을 최대 치적으로 꼽는 국민의 정부 들어와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최근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성실한 직장인'은 거의 진입할 수 없게 된 서울 강남은 그 단적인 표현에 다름 아니다.
술 마시는 사회,술 권하는 사회는 바로 이런 배경을 깔고 있음을 지도자들은 늘 곱씹어야 한다.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