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조정 국면이 길어지고 있다. 미국시장이 다시 우호적이지 않은 경제 지표와 씨름하며 조정양상을 보이자 국내 시장도 눈치보기 흐름이 불가피한 모습이다. 불안한 수급과 모멘텀 부재 상황에서 외국인의 선물 단타에 휘둘리는 무기력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코스닥기업의 시세조정 적발이 잇따르면서 투자심리 위축이 더했다. 미국 경기지표가 혼조세속에 최악의 국면을 지나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인식이 강해 종합지수 20일선 부근에서의 하방경직성에 대한 믿음은 여전하다. 그러나 중동정세 불안에 따른 유가급등, 반도체 현물가 약세, 국내 정치권 대립 등 주변 여건의 불안정성이 쉽사리 추세전환 반등을 허용하지 않을 태세다. 시장 불확실성이 당분간 이어진다고 할 때 당장 관망이 필요하다. 미국 증시가 다시 안정을 찾을 경우 개인의 풍부한 현금이 유입될 만한 저가 대형주 등으로 관심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 경제 지표, 방향제시 실패 = 월말을 맞아 국내외 경제지표가 잇따라 발표된 가운데 시장은 독해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이미 경제전망에 대한 눈높이를 상당부분 낮춰놓은 상태라 악화폭이 예상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경우 악재보다는 호재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모습이다. 미국 주택판매, 내구재 주문 등 실물지표의 개선추세가 하나 둘 확인되고 있지만 심리지표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어 혼조국면을 지나고 있는 상황이다. 27일 나온 미국의 7월 내구재주문과 컨퍼런스보드의 8월 소비자신뢰지수는 방향이 엇갈렸다. 내구재주문은 지난해 10월 이후 최대폭인 전월대비 8.7% 증가폭을 기록해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냈다. 지난 7월 금융시장 불안으로 신용위험이 확대된 상황에서 내구재 주문이 예상치를 상회한 점은 미국 경기회복세가 지속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부분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투증권 정무일 이코노미스트는 “구성항목별로 여전히 불안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나 회복단계에는 특정산업에 의해 주도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며 “다만 운송기기 변동폭이 크다는 점을 고려할 경우 운송기기를 제외한 3.9%증가율을 실질적인 증가율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심리지수인 소비자신뢰지수가 당초 예상치 97.0을 크게 밑돈 93.5를 기록하면서 미국의 고용불안과 소비회복이 여의치 않음을 시사했다. 특히 현재 평가지수가 전월대비 7.4p 하락한 92.0 을 기록하면서 94년 10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내 지난해 9.11 테러 당시보다 미국 소비자의 불안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문제는 오는 30일 발표될 미국의 개인소비와 지출 지표도 소비자신뢰지수와의 밀접한 연관성을 고려할 때 증시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통계청이 내놓은 국내 7월 산업활동 동향은 전년 동월 대비 8.9% 증가했지만 두달째 설비투자와 선행지수 전년동월비가 감소세를 보여 향후 경기 상승 국면에 불안요인을 드러냈다 ◆ 외국인 현물 매도, 20일선 테스트 조짐 = 최근 전저점에서 750선 부근까지 상승랠리를 이끌어 온 외국인이 수급 악화를 주도하고 있다. 외국인은 거래소에서 지난 26일부터 사흘째 1,000억원 이상의 대량 순매도세를 나타내고 있다. 외국인 매도세는 삼성전자에 집중됐다. 삼성전자는 닷새연속 내리며 33만원대 아래로 밀렸다. 삼성전자는 최근 1조원대의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방어에 나서 지난 21일 35만원대를 되찾기도 했지만 28일 자사주 매입이 완료되면서 외국인 매도공세에 무방비로 노출된 모습이다. 이러한 외국인 매도는 선물시장에서의 외국인의 투기적 단기매매에 가려져 충격이 직접 드러나지 않는 측면도 있지만 삼성전자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 시그널로 해석되기도 한다. LG투자증권 강현철 책임연구원은 “외국인이 사흘째 매도우위를 보인 가운데 매도 규모가 커지고 있어 단순한 기술적 흐름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연구원은 “이는 모건스탠리, ABN암로 등 외국계 증권사가 최근 미국시장 회복 둔화에 따라 한국의 하반기 GDP성장률을 내린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며 “기업의 채산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시장을 아래쪽으로 더 밀고 갈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약세장 랠리의 한계를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판단하에 750선과 710선을 사이에 둔 박스권 대응이 유리하다는 지적이 많다. 박스권 상단에서 매도하고 20일선 부근에서 저가매수에 가담하는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 현대증권 엄준호 선임연구원은 “외국인의 선물시장 매매는 현물시장과 괴리를 보이고 있고 이는 시장 불확실 상황에서 작은 수익을 노리는 단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엄 연구원은 “방향성을 잡기는 힘들지만 하방경직성이 강해 미국 시장과의 하향동조화는 예상되지 않는다”며 “건설, 증권 등 저가 금융주와 내수관련주에 대한 관심을 권한다”고 말했다. SK증권 현정환 연구원은 "외국인의 선물 단타는 재료나 수급공백상황에서 많이 나타났다"며 "미국시장이 다시 악재에 민감해지는 양상이라 국내 시장도 조정 경계심리가 강해 당분간 안정을 찾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경닷컴 한정진기자 jj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