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보다 두꺼운 책을 읽어 본 적 이 전혀 없음 23%.'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본 경험이 전혀 없음 41%.' '숙제나 학교수업 이외에는 책을 전혀 읽지 않음 33%.' 일본의 한 유력 일간지가 고교생들의 독서 실태를 파헤친 기사를 최근 빅 뉴스로 다뤄 눈길을 끌었다. 문부과학성 산하의 한 연구소 조사 결과를 인용한 기사였다. 이 신문은 독서대국 일본의 위상이 급속히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알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초·중고생 2천1백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의 숫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가며 학생들의 독서 기피,턱없이 부족한 어휘력 등에 근심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한자도 모르는 중·고생이 적지 않다거나 고학년이 될수록 책을 멀리해 나라와 국어(일본어)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요지였다. 게임 소프트웨어와 신작 만화가 홍수처럼 쏟아지고,초자극성 인스턴트 오락문화가 사방 천지에 널려 있는 일본의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기사내용은 예견된 결과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날 기사에 눈길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대목이 숨어 있었다. 학생들이 독서를 귀찮아하고 나랏말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게 만든 원인에 대한 분석이었다. 조사는 '어른과 교사들이 책을 읽지 않게 된 것'을 가장 큰 이유(39%)로 꼽았다. '교사가 엄하게 지도하지 않아서'(22%)와 '가정교육이 느슨해서'(19%)도 큰 책임으로 지적됐다. 가정과 교실에서 어른들이 책을 멀리하면서 오락과 레저에 더 큰 신경을 쏟은 것이 문제의 뿌리가 됐다는 것이다. 집에 보유하고 있는 장서의 수는? '20~1백권(48%)' '1~10권(28%)'. 책장과 책꽂이를 텅 비운채 어른들이 독서를 시간 때우기 정도로 깎아내린 대가가 청소년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 초일류급이다. 그러나 일본의 독서기피증은 자극성 오락문화에 관한 한 역시 안전지대가 아닌 한국에 의미있는 경고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