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인하를 통해 건강보험재정을 안정화시키겠다며 잇달아 '초강수'정책을 펼친 이태복 보건복지부 장관이 경질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의약분업 이후 시장점유율을 늘려오던 다국적 제약사는 올 1월 이 전 장관의 등장으로 불리한 영업환경에 처하게 됐다. 이에 따라 미국무역대표부(USTR)와 주한미대사관 등을 통해 줄기차게 약가정책 변경, 이 장관 경질 등을 요구해왔으며 청와대가 이같은 압력에 밀려 복지부 장관을 경질했다는게 업계 안팎의 분석이다. 최근에는 USTR 대표와 주한미대사 등 외국 대사들이 모두 6차례나 이 전 장관을 공식 면담한 바 있다. 청와대 복지수석시절부터 의약분업 실시 원칙을 고수해 왔던 이 전 장관은 취임 직후 '아직도 약값에 거품이 많다' '거품을 걷어내 건강보험재정을 건전화시키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를 위해 취임초 야전침대를 집무실에 배치해 놓고 서너달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는 등 결연한 실천의지를 보여줬다. 이 전 장관은 약가인하와 의약품사용억제를 위해 기존 정책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고 '약제사용 적정성 평가' 등 8개 약가인하대책을 새로 추진하면서 국내외 제약업계의 불만을 샀다. 우선 취임 전에 외국의 통상압력으로 백지화됐던 참조가격제(고가약 억제정책)를 재추진해 왔다. 특허기간이 만료된 외국의 오리지널 의약품을 선정해 약가를 낮추려는 방안도 모색했다. 지난 4월에는 병의원이 약제를 적절히 처방하는지 감시하는 '약제사용 적정성 평가' 제도를 도입했고 약제상한금액의 산정기준을 개정해 의료비중 약값이 차지하는 비용의 상한액을 낮췄다. 외국에서 들여온 신약의 경우 외국 공장도 출하가를 근거로 보험약가를 산정하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동일 성분에 동일 함량의 약이라면 약가 편차가 3백%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했다. 이같은 이 전 장관의 '악행'으로 다국적 제약사의 매출신장세는 눈에 띄게 꺾였다. 국내 제약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30년 가까이 제약업을 해온 오너경영자의 입에서 '제약업을 접고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고 싶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이 장관이 의욕적으로 개혁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촉발된 관련 단체들의 반발과 저항을 견디지 못해 중도하차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와 관련, "장관 교체 이유는 중산층과 서민층을 위한 복지정책을 더욱 열성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중산.서민층의 고통이 많았던 점을 항상 염려해 왔으며 이 부분의 복지정책을 강도 높게 추진해 왔다"고 전제하고 "새 인물을 통해 '찾아가는 복지정책'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장관을 교체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근.정종호 기자 yg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