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6:57
수정2006.04.02 17:01
"배용준의 바람머리에서 안정환의 아줌마퍼머와 베컴의 닭벼슬 머리로"
2002년 상반기 국내 젊은 남성들의 헤어스타일 변천사다.
겨울부터 봄까지는 KBS2TV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 준상역을 맡은 탤런트 배용준의 살짝 삐친 듯한 갈색 바람머리가 대유행이더니 월드컵대회를 치르는 동안 안정환과 베컴의 스타일로 바뀌었다.
남성의 헤어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건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처럼 보인다.
각국에서 월드컵 출전선수 헤어스타일 따라하기 붐이 일었을 뿐만 아니라 언론 또한 앞다퉈 선수들의 머리모양에 대한 기사를 앞다퉈 내보냈다.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이번 월드컵 출전선수 헤어스타일의 주제는 "모히칸"(아메리카원주민)이었다며 잉글랜드의 베컴,일본의 도다,미국의 매시스,독일의 치게,터키의 다발라를 "모히칸스타일 베스트5"로 뽑았다.
또 미국 LA타임스는 인상적인 헤어스타일 1위로 나이지리아 웨스트의 도깨비뿔 머리,2위로 브라질 호나우두의 깻잎머리를 선정했다.
실제 이번 월드컵에선 베컴의 닭벼슬머리와 브라질 호나우두의 깻잎머리 외에 갖가지 헤어스타일이 등장,눈길을 모았다.
독일의 치게는 머리를 세등분한 뒤 양쪽을 밀고 남은 가운데머리엔 독일국기 색깔인 "흑 황 백"으로 염색했고 프랑스의 골키퍼 바르테즈,독일의 얀커 등은 빡빡 밀었다.
브라질의 호나우디뉴는 단발머리 퍼머,세네갈의 브루노 메추감독은 베토벤머리,프랑스의 시세는 짧게 자른 곱슬머리를 금빛으로 염색해 이목을 끌었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선 안정환의 "아줌마퍼머"와 양쪽을 짧게 자르고 정수리부분만 길러 물들인 뒤 세우는 베컴의 "닭벼슬머리"가 인기있는 형태로 꼽힌 셈이다.
그 결과 서울 강남과 신촌 일대 미용실에는 안정환과 베컴식 머리를 하려는 남성들로 붐비고 정통 베컴식 대신 삐죽한 부분에만 염색한 "한국식"도 나왔다고 한다.
남성들이 머리모양에 신경쓰는 건 외모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까닭일 것이다.
최민수식 터프남보다 원빈스타일 꽃미남이 인기를 모으면서 피부관리는 물론 눈썹을 손질하고 머리결에까지 관심을 두는 남성이 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일본의 한 화장품회사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남자고교생의 66%가 얼굴의 번들거림을 제거하는 기름종이를 갖고 다니거나 써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고 하거니와 TV주말극 "그대를 알고부터"의 남자주인공 류시원이 미용실에서 염색과 퍼머를 하는 광경이 자연스레 등장한다.
머리모양이 인상을 상당부분 좌우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헤어스타일보다 중요한 건 사람 자체다.
호나우두가 대회 도중 머리를 거의 다 밀고 앞쪽만 남긴 깻잎모양으로 바꾸자 브라질신문 여기저기서 "강아지같다"고 혹평하고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79%가 "역겨운 스타일"이라고 답했지만 호나우두는 "나까지 베컴이 될 필요는 없다.긴장을 줄이기 위해 내가 깎았다"고 응수했는데 실제 그가 계속 골을 넣자 신문에선 "호나우두와 베컴 머리모양이 경기에 미친 영향"을 실었는가 하면 이발소마다 장사진을 이룬다는 것이다.
안정환의 퍼머머리 또한 당초엔 예전스타일인 긴 생머리만 "영 못하다"는 평이었다가 골을 잇따라 성공시키자 "정말 잘 어울린다"로 변했다.
겉모습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당사자의 성취도나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외모가 전혀 상관없진 않다고 해도 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와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는 태도일 것이다.
배용준의 바람머리나 안정환의 퍼머,베컴의 닭벼슬 머리 모두 소화하기 어렵고 손질도 쉽지 않다.
한번쯤 따라 해볼 수는 있겠지만 너무 매달리지는 말 일이다.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