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하락 추세가 언제까지 이어지고 폭은 얼마나 될 것인가. 지난 4월 중순부터 진행된 환율 하락 추세는 여전히 시장에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하반기 초입, 1,200원 붕괴를 목전에 둔 환율을 놓고 시장 참가자들은 추락의 끝이 어디인지, 날개를 달고 언제쯤 어디까지 반등할 수 있을 것인지 계산에 여념이 없다. 이같은 환율 하락 추세의 배경에는 '미국 달러화 약세'가 있다. 전 세계 외환시장에는 미국 경제회복의 불확실성과 맞물린 달러화가치의 하락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하반기 달러/원 환율 동향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국 달러화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 수출과 투자의 도움을 받은 한국 경제의 상승 강도, 수급 상황 등도 변수로서 계속 작용할 전망이다. ◆ 하락 추세 요지부동 = 시장 관계자들은 '아직 환율 하락 추세는 끝나지 않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상반기 중 연중 고점을 본 뒤 환율이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충분히 예상했지만 1,200원을 위협할 정도로 큰 낙폭은 누구도 내다보지 못했다. 이에 따라 하반기 환율 예측도 쉽지 않음을 토로하고 있으나 상반기와 같은 가파른 미끄럼은 타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한경닷컴 취재팀이 외환딜러와 이코노미스트 23명을 대상으로 하반기 환율전망을 조사한 결과, 단순 평균으로 분기 저점은 1,155.65원, 고점은 1,229.35원으로 집계됐다. 연말 환율은 1,182.17원 부근에 수렴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상반기 환율은 1,201.30원에 마감, 종가기준으로 지난 2000년 12월 14일 1,202.00원이래 최저치이자 연중 가장 낮은 수준을 가리켰다. 원화 가치는 지난 연말이후 달러화 대비 8.54%, 지난 4월 12일 1,332.00원의 연중 고점을 기록한 이후 불과 2달 보름여만에는 10%에 가까운 9.81% 절상됐다. 시장은 하반기에도 환율이 추가 하락할 요인이 많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달러화 약세가 당분간 지속되고 있음을 비롯 △수출·투자 등의 회복에 따라 경제 상승기조 △무역흑자 기조 유지 등에 따른 공급우위의 수급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다만 이같은 환율 하락추세는 3/4분기까지 이어진 뒤 4/4분기 반등을 보일 것이란 견해와 연말까지 하락 추세가 점진적으로 계속될 것이란 의견이 나뉘어져 있다. 어쨌든 환율은 일단 바닥을 확인해야 한다는 의사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일시적이고 자율적인 반등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상승 추세로의 반전 시나리오는 쉽게 나오지 않을 전망이다. ◆ 고개숙인 미국 달러화 = 미국 달러화는 전방위적으로 약세 압력을 받고 있다. 미국 경제회복 속도의 지연, 경상·재정수지 적자(쌍둥이 적자)문제의 심각성 부각, 미국 증시의 더블딥(이중 침체) 우려 등 미국 경제를 압박하는 요인 등이 바로 그것. 덧붙여 각종 기업의 회계부정 스캔들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 이같은 요인들은 하반기에도 미국 달러화에 부담을 안겨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하는 미국 경제가 10년 가량 독주를 거듭하면서 자본 흐름이 미국에 치우쳤던 불균형은 '강(强)한 달러'를 자연스레 이끌었다. 그러나 최근 자본의 '탈(脫)미국화'는 세계경제가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으로 인식되는 측면도 있으며 국제 자본은 상대적으로 회복세가 강한 유럽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틀이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이란 인식도 만만찮은 가운데 문제는 달러화 약세의 속도다. 점진적인 달러화 약세가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에 우호적으로 작용하는 반면 급진적인 약세 흐름은 충격파가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경제의 큰 축으로서 작용하는 상황에서 급작스런 자본 이탈과 최대 수요처로서의 위치를 상실할 경우,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로의 파급력을 나타낼 수도 있다. 강명훈 한화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달러화 약세가 하반기에도 유효하고 방향을 틀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나 국제금융시장이나 G7에서 어느정도 수용이 적당한 지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며 "달러 하락폭이 너무 커지면 국제 금융시장의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으므로 충격을 확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상반기 중 엔론, 월드컴 등의 기업회계 부정의혹 등의 여파가 내지른 기업 신뢰도 추락에 따른 회복여부도 뉴욕 증시와 함께 달러화에 영향을 가할 전망이다. 문제는 미국 경제의 회복 속도와 강도에 달려있다. 회복이 늦춰졌다는 이유가 시장의 불안감을 부추겼지만 회복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어 달러화는 적당한 수준을 찾아간다는 것.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상반기말 시장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한 결과, 미국 달러화가 연말에는 반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 연말 달러 가치는 평균적으로 엔과 유로에 대해 각각 123엔 및 0.99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미국 경제지표는 크게 급락하거나 떨어지지 않고 있으며 다만 통화가치가 국가간 상대적인 지표임을 감안하면 국가간 환율의 차별화된 양상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 이미 등가(1유로=1달러)수준에 근접, 유로 경제가 상대적으로 미국 경제에 비해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자본 흐름도 이와 궤도를 같이 하고 있는 셈. 국제 금융시장은 하반기 초입 '1유로=1달러'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상하고 있다. 다만 엔화에 대해서는 일본 경제와 맞물려 추가 하락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경제가 바닥을 찍고 서서히 회복하는 과정이긴 하나 여전히 은행권의 부실채권, 소비 침체 등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또 일본 외환당국이 엔화 강세가 경제회복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 달러/엔 환율의 하락에 끊임없이 재동을 걸고 있다. 수차례 일본은행(BOJ)이 '달러매수-엔매도'의 직개입에 나선 데다 향후 추가 개입을 시사하고 있는 점이 달러/엔의 하락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지난 상반기 말 뉴욕에서 달러/엔은 한때 9개월 중 최저치인 118엔대까지 미끄러졌다가 일본 재무성의 요청으로 미국과 유럽중앙은행들이 엔화를 매도, 다시 119엔대를 회복하는 등 엔화 강세를 극구 저지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이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달러/엔은 일단 115엔 정도까지 하락이 가능하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즉, 달러화는 약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크되 상대적으로 유로화 강세는 부각되는 반면 엔화는 강세 흐름이 제한될 것으로 전망됐다. 윤종원 ABN암로 딜러는 "달러가 2년동안의 상승추세가 무너지고 하락추세로 바뀌었다"며 "그러나 단기적으로 미국 나스닥 등이 반등하고 바닥을 다지고 있어 달러화 약세가 시간이 갈수록 차츰 진정될 기미가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경제의 회복 여부에 따라 상반기 중 약세 흐름에서 언제 얼마만큼 반등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견조한 국내 경제 = 달러/엔 환율은 이같은 전 세계적인 미국 달러화 약세의 흐름 속에 편입된 가운데 내부적으로도 변수 요인을 섭렵, 원화 강세가 자연스러움을 확인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6월 수출이 월드컵, 자동차업체 파업, 환율 하락 등으로 불과 0.5% 증가에 그쳤지만 하루 평균 수출액이 6억500만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6월(5억5,000만달러)보다 10% 증가, 실질적인 수출 증가세가 지속되고 하반기 수출의 회복세가 뚜렷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무역수지도 6월에도 두자릿수 흑자인 10억3,000만달러 흑자로 상반기중 무역흑자 누계액은 52억1,900만달러로 잠정 집계됐다.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하반기 수출입이 9.11테러 사태 등으로 워낙 부진했던 터라 7월이후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고 무역흑자도 35억달러 안팎에 달해 연간 무역수지가 90억달러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같은 수출 회복세가 하반기 국내 경제의 견조한 상승세를 주도할 것이란 전망도 꽤 많다. 정부를 비롯해 주요 연구기관은 한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인 5∼6%를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하반기 수출과 투자의 회복세에 힘입어 이미 올 성장률이 6%대에 이를 것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국내외 경제연구소나 투자은행(IB)들도 6∼7%로 한국 경제성장률을 상향조정하고 있다. 전윤철 부총리는 지난 상반기 말 "내수와 수출이 조화를 이루며 성장하고 있어 1/4분기를 토대로 전망할 때 올해 6%대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며 "성장의 질이 좋은 모습이지만 미국경제가 불투명하고 불안요인이 있어 현 경제정책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탄력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경기회복의 기시감이 뚜렷한 가운데 하반기에는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의 한국 신용등급 상향조정이 예상돼 외국인투자(FDI)자금의 유입이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지난 상반기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무디스와 피치가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A'등급으로 상향 조정한 바 있어 외국인의 긍정적인 시각은 한 층 강화될 여지를 안고 있다. 무역수지도 수출 증가세 확대 등에 힘입어 흑자기조를 유지하면서 하반기 35∼50억달러 가량의 흑자가 예상돼 연간으로 100억달러도 가능하리란 예상도 있다. 시장에 달러 공급이 우세하리란 예상을 하기란 어렵지 않다. ◆ 하락 속도와 폭의 조정 = 이같은 원화 강세 요인에 대적할만한 변수는 정책당국의 개입 여부와 강도이다. 일본 외환당국의 직간접 개입여부가 국내 시장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한국 정부도 고민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최근 구두개입의 핵심은 '경제 회복세'와 연관된 환율 안정의 추진으로 집약될 수 있다. 달러매수가 취약한 최근 상황에서 달러/엔에 집중 연계된 시장 참가자들의 환율 하락 심리를 제어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는 셈. 정부는 환율이 최근 수출에 미치는 영향력이 예전같지 않지만 일정부분 영향을 가하고 있다는 판단하에 우리경제 회복세를 저해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개입도 시장 방향을 거스르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속도조절용'으로서의 한계는 명백하다. 직접 개입도 외환보유고의 과다논란이 일고 있는 시점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 한때 100엔당 970원선으로 내려섰던 엔/원 환율도 최근 1,000원대를 회복한 흐름이기 때문에 개입의 실질적인 효력이나 시장의 긴장을 유발하기엔 다소 미약한 감이 있다. 외환당국의 개입은 일단 엔/원 환율 수준이나 시점 등을 감안하되 시장의 대세를 바꾸는 이도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최근 일본은행(BOJ)와 유럽중앙은행(ECB)의 공조개입에서 보여지듯 각국 중앙은행간 공조 등을 통한 통화가치의 인위적인 조정이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밖에 12월로 예정된 대선과 돌발적인 서해 교전에 따른 남북관계 경색 등 정치·군사적 요인은 돌발적으로 엉뚱한 방향으로 튀지 않는 한 시장의 큰 그림을 뒤바꿀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부에서 위안화 절상 압력이 대두될 가능성을 제기, 시장의 미시적인 그림은 일시적인 변동을 보일 수도 있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