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하늘...바람...내가 하나되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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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을 떠난지 3시간 남짓, 새벽 2시가 넘어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공항에 도착했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의 밤하늘은 수많은 보석알을 박아 놓은 듯했다.
해발 1천3백50m.
하늘과 가까운 곳이어서인지 감당할수 없을 만큼의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울란바토르.
'붉은 영웅'이란 뜻이란다.
과거 러시아의 붉은 군대를 이끌고 와 청나라를 물리쳤던 몽골의 장군 스크바트르를 기리기 위해 이름붙였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
낯익은 시내 거리모습에 깜짝 놀랐다.
'용당~시청~고속터미널' 한글이 선명한 한국의 시내 버스가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울란바토르 전체 차의 70%가 한국산 중고차라고 한다.
상점 진열대마다 가득히 쌓인 한국 제품, 길가 어디서나 들을수 있는 한국가요, 몽골은 이미 한국과 너무나 가까운 나라였다.
역사박물관을 찾았다.
길(吉)자 무늬, 태극무늬, 아쟁과 가야금을 빼닮은 악기들.
박물관 앞 엄마 품에 안겨 자고 있는 아기 엉덩이의 퍼런 몽고반점 역시 몽골리안이 한국인과 같은 뿌리의 민족임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서쪽 하락호름을 향해 달리면서 사라졌다.
가도 가도 끝없는 초원, 그 광활함은 분명 한국의 풍경이 아니었다.
가슴 속에 쌓인 오랜 응어리가 한순간 날아가는 것 같았다.
초원을 말 달리는 유목민처럼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고 싶었다.
하늘은 깊이를 알수 없을 만큼 새파랬다.
뭉쳐 있는 구름덩이는 솜털을 붙여 놓은 것처럼 하얗게 빛났다.
풀을 뜯고 있는 수많은 양과 말은 '넉넉하고 한가롭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다.
잊을라치면 어느새 시선에 잡히는 돌무지가 낯설었다.
몽골말로 '어워'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 시골마을의 서낭당격이라고 보면 된다.
칭기즈칸이 출정시 병사들에게 돌을 주워 마을어귀에 쌓아두게 했다가 돌아올 때 찾아가게 함으로써 전사자 숫자를 파악하는데 사용했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마음을 푸는 곳으로 바뀌었다.
보통 어워 주위를 세번 돌며 소원을 빈다고 한다.
똑같은 모습으로 이어지는 초원풍경이 좀 지루하다 싶을 때 길가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아기를 안은 아낙을 만났다.
차를 세우자 그 아낙이 겁없이 올라탔다.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듯 스스럼이 없었다.
즐겁게 한 자리를 내 주었다.
'헝헌체젝', 두살바기 아기의 이름은 초롱꽃이라는 뜻이었다.
콧물을 흘리는 아기얼굴에서 그리 오래지 않은 우리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겠어요?"
"서렁거스."
서렁거스라고 했다.
서렁거스는 무지개란 뜻.
칭기즈칸 군대가 고려에 왔을 때 무지개가 많았고, 그때부터 몽골사람들은 한반도를 무지개의 나라로 불렀다.
무지개의 나라,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말이다.
아낙과 아이를 내려주고 근처 유목민의 게르에 잠시 들렸다.
게르는 몽고의 이동식 전통가옥.
게르 안은 양 냄새가 물씬했다.
가죽을 덮어 놓아 무척 더울 것 같았는데 뜻밖에도 바람이 잘 통해 선선했다.
주인 바잘락차씨의 부인이 먹을 것을 권했다.
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마유주 '에르크', 치즈인 '어름', 과자의 일종인 '아알오르'를 맛보았다.
독특한 맛 때문에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길손에 대한 배려와 인정미에 배가 불렀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그네들의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백야현상으로 인해 오후 9시가 넘어서야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에르덴조 사원을 지날 무렵 온하늘이 보랏빛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지구를 포도주스에 퐁당 담궈 놓은 듯 했다.
테를지는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국립공원.
귀한 손님이 올 때만 내린다는 단비 덕분에 테를지로 가는 길은 선선했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언덕을 뒤덮은 들꽃이 어울린 풍광은 독일이나 스위스의 어느 시골마을 봄풍경을 연상시켰다.
몽골에는 광활한 초원밖에 없다고 생각했던게 실수였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들이키며 말을 타보았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지만 곧 몸에 익어 제법 빨리 달릴수 있었다.
초원의 바람을 맞으며 말을 달리는 순간 몽골과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