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의 싱크탱크라고 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기술연구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더불어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연구소의 양대 축이었다. 그런 KDI가 정부나 정치권이 간여하는 정도에 반비례해서 위상이 점점 격하되더니 이젠 그 최종판이라고 할 만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강봉균 전 원장이 오는 8월 8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지난 10일자로 원장직을 그만둔 것이 KDI 입장에서만 보면 어떨까. 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실패하고 난 후와,다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는 그 기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KDI 원장자리.개인 입장에서는 아무렇지 않을지 몰라도 연구소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 있다. 재경부는 이번에도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무리(無理)를 감수하려 들까. 아무개 전직 차관에다 경기지사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는 인사까지 거론되는 걸 보고 심상찮다는 얘기들이 많다.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가 원장을 뽑는다고 하지만,정부가 의지를 관철시키려 하면 못할 것도 없는 의사결정 구조인데다,바로 재경부가 그런 구조로 변형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인식까지 있으니 말이다. 무리한 것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모 국회의원은 차기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KDI 원장을 임명치 말고 대행체제로 가라는 성명을 냈다. 새 정부의 형태나 성격이 불확실한 시점에 임기 3년의 원장을 선임하면 그 기능과 역할이 '제약된다'는 것이다. 초대 KDI 원장을 지냈다는 국회의원이 하는 걱정스런 충고로 볼 수도 있겠지만,달리 생각하면 주제넘은(?) 것일 수 있다. 한나라당이 마치 정권이라도 쟁취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원장을 임명할 경우 새 정부 하에서 KDI의 기능과 역할이 제약된다고 인식한다면,현정권이든 새정권이든 그게 그거 아닌지 모르겠다. 정권이 어떻게 변하든 연구소가 있어야 한다면,그것도 국제적으로 내세울 만한 연구소를 원한다면,민주당이든 한나라당이든 그리고 재경부든 이제는 정말로 KDI 자존심을 생각하는 원장인사를 고민하기 바란다. 안현실 논설ㆍ전문위원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