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령부리지 않고 사심이 없다는 점 때문에 다시 큰 일을 맡겨준 것 같습니다" 지난 17일 취임한 강동석 한국전력 신임사장의 첫 마디다. 강사장에게선 단군이래 최대역사로 꼽히는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8년간 진두지휘했던 맹장 같은 인상을 찾기 어려웠다. 자신의 말처럼 정말 요령이 없는 것일까. 그는 취임식날 이사들을 대동하는 기존 관례와는 달리 수행비서만 덜렁 데리고 가 산업자원부장관에게서 사장 임명장을 받았단다. 공항 개항식 때도 임원들과 함께 대통령이 주는 공로표창을 받지 않겠다고 결의해 결국 수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요령부리지 않고 사심없이 일에 전념했던 흔적은 인천공항 건설과정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건설업체들과 직원들을 다루는 현장에서는 철저한 원칙주의를 유지했다. 인천공항 건설을 담당한 신공항건설공단은 본래 본사가 여의도 전경련 빌딩에 있었다. 영종도엔 사무소만 두었다. 신공항건설공단 이사장이었던 그는 일주일에 두번정도 현장을 방문했었다. 그러나 94년 공항건설이 본격화되면서 본사를 영종도로 옮겼다. 현장의 건설업체 직원들과 신공항건설공단 직원들이 밤에 숙소에서 술마시고 노름(고스톱)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사장이 현장에 없으면 공사장의 긴장감이 풀어져 죽도 밥도 안되겠더군요. 이전 즉시 노름과 음주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다음날 업무능률을 올리고 안전사고를 없애자는 목적이었습니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그의 현장독려는 갈수록 강도가 높아갔다. 96년 9월엔엔 아예 자신의 주소를 안양시 평촌에서 공사현장인 영종도로 이전했다. 컨테이너 박스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공사현장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독하면서 현장 건설업체들의 하도급 구조를 바꿔놓았다. "하루는 덤프트럭 업자 2명이 사무실 앞마당에 자갈을 잔뜩 부려놓고 도망갔어요. 사정을 캐보니 인건비가 두세달 밀린데다 그것도 어음으로 지급받아 화풀이를 했다는 겁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신공항건설공단측에서는 원청 건설업체에 공사대금을 현찰로 지급했는데 개인 덤프트럭업자등 하도급 업체들은 어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음이 부도라도 나면 공사차질을 빚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그는 "현찰로 하도급업체와 정산하지 않으면 신공항측도 공사대금 지급에 애를 먹일 것"이라고 원청 건설업체들에 으름장을 놓았다. 암행조사는 물론이고 구내식당에 대자보까지 붙였다. "인건비,장비 사용료등을 현금으로 받지 못하면 사장실,감사실에 신고하라.신고자는 신분보장을 해주겠다"는 내용이다. 만나는 원청업자들에게는 입이 닳도록 설득했다고 한다. "당신들 연말이면 교회가고 성당 가서 불우이웃을 위해 기도하지 않느냐.기도 열번 하느니 불쌍한 현장근로자들 돈이라도 제대로 줘라.하느님이 점수 더 주실거다" 그는 현장에서 부실공사란 단어조차 꺼내지 못하게 했다. "00년 부실공사 방지의 해"라고 입간판을 걸어놓으면 불호령을 내렸다. 그전까진 부실공사만 해 왔다고 떠벌리는 것이냐며 건설업체마다 다른 표어를 걸도록 했다. "기술의 00사"."혼을 담은 시공"등으로 자신들이 담당한 공사에 자부심을 갖도록 했다. 그는 또 부실이 드러나고 벌점을 받으면 공항동쪽 홍보관에 해당 시공업체의 사기를 조기식으로 내려 걸게 했다. 콘크리트 타설의 경우엔 시공자와 감독및 감리자,레미콘 차량번호및 운전자 이름,배합비율,타설시간등을 데이터 베이스화했다. 후에 역추적해 부실책임을 물을 수 있게끔 한 것이다. 그는 인천공항이 개항할 수 있었던 공을 직원들에게 돌렸다. "97년 IMF관리체제로 접어들면서 거의 대부분의 공공건설공사가 중단됐을 때 영종도 공항건설은 가장 큰 공사였습니다. 5조6천억원이나 투입된 공사이다 보니 참여하지 못한 사업자들의 청탁과 로비,모함등이 난무했지요. 그러나 한사람의 직원도 독직하지 않았습니다. 사장의 의지를 따라준 게 너무 고마워요" 그는 한전 역시 그렇게 지휘하고 싶다고 한다. 한전 기업문화의 좋은 점은 향유하고 발전시켜 나가돼 불합리한 점은 과감히 개혁해 나가겠다는 의지다. "한전은 역사와 전통이 깊습니다.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어요. 발전원가대비 전기료가 싸고 정전대응력등 서비스도 세계적 수준 아닙니까. 한전이 한국의 제조업 발전에 기여한 공은 이루말할 수 없지요. 한전맨들이 가진 자부심의 원천입니다" 그는 다만 발전소 매각및 배전부문 분할을 통한 민영화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전향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전맨들을 설득할 방침이다. 민영화에 힘입어 사회적 비용이 낮아지고 서비스가 더 좋아진다면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강사장은 "민영화는 최종 소비자가 A전기회사,B전기회사를 선택하도록 보다 완전한 경쟁체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라며 "아파트단지내 고속통신망 설치경쟁이 설치료를 낮추고 서비스 개선을 가져왔다"는 예를 들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아예 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했다. 민영화는 시속 5km,10km 하는 식으로 패이스를 조금씩 조절해 가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향후 예정된 배전부문 분할의 경우 1년동안 분할 테스트기간이 주어져 있어 문제점을 보완하면 된다는 것. "1년 가지고 모자라면 2년 더 테스트 기간을 달라고 정부에 요구할 겁니다. 의약분업도 시험기간을 뒀으면 부작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북한산 백운대까지 오르는데 꼭 구기동 코스만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는 앞으로 전기산업이 국경없는 산업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발전,송전능력과 기술을 키우면 전력수출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중 중국이 주요 수출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중국경제가 급성장,전력부족이 예상되기 때문이란다. "중국은 양자강 유역을 막아 세계최대인 삼협댐을 건설중입니다. 하지만 1천만 발전용량의 댐 10개를 만든다는 당초 마스트플랜을 달성할진 의문이예요. 강 주변지역의 문화재 수몰문제나 하류지역 베트남과 라오스등의 수자원 고갈문제등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중장기적인 비전제시와 함께 발전.배전부문 분리및 민영화로 인한 한전맨들의 박탈감을 해소하는 일도 신임사장의 1차적 임무임을 잊지 않았다. "정도(正道)가 가장 마음 편하다"며 "요령부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면 접촉사고는 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 ----------------------------------------------------------------- < 약력 > 38년 전북 전주 출신 전주고,경희대 법학과,연세대 행정대학원 졸업 65년 제3회 행정고시 합격 79년 교통부 관광국장,도시교통국장,육운국장 87년 민정당 교통.체신 전문위원 92년 교통부 기획관리실장 93년 해운항만청장 94년 교통안전진흥공단 이사장 99년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 이사장 99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2002년 한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