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날이 빨리 더워졌다. 불쑥불쑥 이어지는 7월 같은 4월 더위가 당황스럽다. 하지만 계절의 흐름은 여전하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자. 나뭇가지의 연둣빛 작은 잎새, 그 끝에 찬란한 5월을 준비하는 싱그런 4월이 달려 있다. 장성(長城)으로 향한다. 호남고속도로 호남터널이 지나는 방장산~입암산 줄기가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도 쉬어 넘을 정도로 길고 험한 성곽 같다 해서 이름 붙여진 고장이다. 허균이 쓴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인 홍길동의 고향(설성경 연세대교수)으로, 특히 예쁘고 잘생긴 나뭇길과 숲이 발길을 끄는 곳이기도 하다. 먼저 내장산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백양사. 깎아지른 듯한 학바위 아래 들어선 고불총림 백양사는 '스님의 설법을 듣고 환생한 흰양'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는 사찰. 주차장에서 두개의 계곡물이 합쳐지는 곳에 있는 쌍계루까지 1.8km 길이 압권이다. 죽 늘어선 연둣빛 잎새의 애기단풍이 발갛게 타오르는 늦가을 못지 않은 희열을 안겨준다. 길따라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더해져 걸음걸음이 그렇게 가벼울수 없다. 군데군데 5백~6백년 수령의 아름드리 갈참나무는 고찰의 풍모를 전해준다. 쌍계루에서 50m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면 발걸음이 절로 멈춘다. 조화로운 크기의 쌍계루, 환하게 피어난 애기단풍과 이팝나무잎, 하얀 학바위 그리고 그 모두를 잔잔히 비춰내는 폭넓은 계곡물이 공들여 그린 그림보다 아름답다. 물속에는 비단잉어가 여유롭고, 계곡을 가로질러 낮게 쌓은 돌둑 위는 연인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쌍계루 앞마당 건너편 산기슭의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153호)에는 팔뚝만한 청솔모가 제세상을 만난듯 활개친다. 축령산의 숲은 자랑스럽다. 독일병정의 자세로 죽죽 뻗은 편백, 측백, 삼나무가 시원스럽다. 국내 인공조림지의 메카로 꼽히는 이곳은 조림왕 고(故) 임종국씨가 1956년부터 가꾸었다고 한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해 초겨울의 한기가 느껴질 정도다. 모기향의 원료로도 쓰이는 편백이 많아서인지 다른 숲과 달리 공기가 한층 깨끗하게 느껴진다. 제대로 된 삼림욕을 즐기기에 알맞다. 올해 산림청이 사들여 경영모델림으로 조성중이다. 대국민 산림교육장으로도 활용한다고 한다. 추암관광농원쪽에서 4km 정도의 축령산길 너머에 있는 금곡마을을 빼놓을수 없다. 영화 '태백산맥' '내마음의 풍금' '침향', 드라마 '왕초' 등을 찍은 영화마을이다. 전형적인 산골마을의 푸근한 분위기가 지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준다. 장성=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