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빈자리가 생겼을 때 먼곳에서도 쏜살같이 달려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몸이 안따라가면 가방이라도 던져놓고 자리를 거뜬히 낚는 노하우의 소유자.엉덩이가 뚱뚱한 이른바 "한국 아줌마"를 표현하는 우스갯소리다. 그러나 여기 이들과 대비되는 "엉덩이 가벼운 아줌마들"이 있다. 하루라도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지 않으면 엉덩이에 뿔이 돋는다는 이 레포츠의 아줌마 마니아들이다. 시원스레 트여있는 일산 신도시 미관광장.매주 월요일 오전10시만 되면 이곳엔 핑크빛 옷에 헬멧과 보호대로 무장한 "인라인 스케이트 부대"가 뜬다. 몇몇은 장애물 넘기,의자 뛰어 넘기 등 고난도의 "기술"도 선보인다. # 우리더러 '엉뚱'하다니... "어! 제법인데" 지켜보는 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다가가보면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스케이터가 쓰고 있는 코팅된 고글속에 봄 햇살이 직사각으로 내리쬐는 순간,스케이터의 눈밑으로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주름이 드러난다. 웬만한 젊은이들 뺨치는 프로급 스케이터의 정체는 "아줌마"다. 그것도 하루 종일 집안일에 손에 물마를 새 없는 전업 주부들이다. 이들은 고양녹색소비자연대에서 운영하고 있는 주부 인라인 동호회 "그린휠(green wheel)"소속 회원들이다. 소비자 단체의 이름이 걸린 만큼 단순히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기 위해 결성된 모임은 아니다. 이들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무공해 교통수단"으로 생각하며 "녹색교통 녹색 도시 일산 만들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환경 지킴이"들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은 채 장을 보러 간다.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주말농장에 가서 씨앗도 뿌리고 농촌 현장을 체험한다. 한달에 한번씩은 "로드런(road run)" 캠페인을 열어 노란 풍선을 들고 일산 시내를 한바퀴 돌면서 불법 주차 단속도 한다. 대원들은 도로에 마구잡이로 불법주차돼 있는 차들을 보면 쌩쌩 달려가 노란 풍선을 차 유리에다 붙인다. 일종의 옐로 카드인 셈이다. 이만하면 "환경 파수꾼"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다. 이 모임의 온라인(cafe39.daum.net/greenwheel) 관리를 맡고 있는 신성화(32.고양시 일산구 주엽동)씨는 지난해 9월 "그린휠"이 탄생했을 때부터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탄 지는 6개월 남짓.이제 걸어다니는 게 답답할 정도로 인라인 스케이트의 "스피드"에 푹 빠져있다. 육교 계단도 스스럼 없이 척척 오르내리고 간단한 장애물도 뛰어넘는다. 멋진 고글에 분홍 머리띠에 겉모습부터 "프로" 냄새가 물씬 풍긴다. #누나라는 말도 들어요. "지금 제 모습 보면 상상이 안 가시겠지만 원래 집에만 틀어박혀서 지냈어요. 낙이라곤 리모콘을 끼고 사는 거였죠.정규 프로그램이 끝나면 홈쇼핑 보는 걸로 하루를 보냈죠.취미라 해봤자 종이접기 십자수 같은 앉아서 하는 거였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애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는 걸 보곤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죠. 첨엔 안쓰는 근육을 썼더니 얼마나 아프던지 한동안 근육이 뭉쳐 꽤 고생했어요. 그래도 배우다 보니 참 재밌더라구요. 겨울엔 땅이 얼어 야외에서 운동을 할 수가 없어서 할인 매장 주차장에서 몰래몰래 연습했어요. 눈치보면서 한창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데 주차장 관리요원이 "거기 누구예요"라고 물어와 후다닥 뛰어나오곤 했죠.(웃음) 열의가 얼마나 대단한지 제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어요. 한번은 공원에서 한창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데 제 또래 되는 아줌마가 아이 손을 잡고 지나가다가 "저 누나 봐.정말 잘 탄다 그치?"라고 말하는 거예요. "누나" 참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말이었어요. 그렇게 젊어 보인다니 뛸 듯이 기쁘더라구요." #환경지키기 한몫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김문정(35.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씨는 유달리 환경에 관심이 많은 주부다. 통학로 안전실태,학교급식 위생 상태 모니터 활동 등 소비자 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던 중 "그린휠"에 참여하게 됐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통해 사회를 더욱 잘 알게 됐다는 김 씨.그의 6개월 인라인 스케이트 체험기다. "인라인 스케이트가 단순한 레저 생활을 넘어 생활의 한 부분이 됐어요. 스케이트를 신고 장을 보러 다니고 웬만한 거리를 이동하는 데는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대신 스케이트 끈을 묶죠.특히 친환경적인 교통 수단이라는 점이 맘에 들었어요. 소음과 공해에 찌들어있는 요즘,건강도 챙기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겠어요. 타고 거리를 나가보니 그동안 아이들이 느꼈을 불편함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더군요. 불법 주차도 그렇고,높은 턱도 그렇고.이런 문제점들을 직접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아이들이 "우리 엄마도 이런 걸 다하네" 생각하면?엄마들을 "구식"이라고 무시하지 않게 되는거죠.엄마들도 그동안 집안 일만 하면서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어요. 애들한테 치이고 남편한테 볶이면서 쌓인 스트레스도 한꺼번에 떨칠 수 있죠" #가족사랑까지 담게 됐죠. 유일하게 남편과 함께 동호회에 나타나 유별난 금슬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신은주(34.고양시 일산구 주엽동)씨.인라인 스케이트 덕에 남편,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행복하다는 그녀의 인라인 스케이트 예찬론이다. "주말에 집 근처 공원에 갈 때마다 속상했어요. 남편은 자전거 타고 쌩쌩 가버리고 아이들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질주하니 저만 항상 뒤처져 헉헉거리며 가는 거예요. 그게 너무 싫어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젠 남편 손 잡고 같이 공원까지 갈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 (웃음) # 남편 몰래 나왔어요 첨엔 집 밖에 나오는게 부끄러웠지만 이젠 아무렇지 않아요. 지나가다 보면 "재밌냐,어렵냐,어디서 샀냐" 물어오는 중년 분들도 많아요. 원래 유기농 농산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린휠" 활동을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농장에 가서 씨 뿌리는 기분,안 해본 사람들은 몰라요. 이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탄지 3주 정도 밖에 안되는 신입회원 이주현(37.고양시 일산구 장안동 호수마을)씨.남편 몰래 장비를 사서 들킬까 창고 안에 꼭꼭 숨겨뒀다. 아직 스케이트를 신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 취하는 데도 연신 엉덩방아를 찧어대는 그녀.그래도 벌써 운동하는 재미에 쏘옥 빠졌다. "길거리에서 회원들이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걸 봤는데 하고 싶더라구요. 뱃살도 뺄겸.남편한테 넌지시 물어봤더니 말이 입에서 다 나오기도 전에 "주책 떨지말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구박이 심해도 한번 맘먹은 건 바꿀 수 없었죠. # 몸따로 마음따로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거금을 들여 남편 몰래 스케이트도 샀어요. 아이들도 몰라요. 혹시 들키지나 않을까 맘 졸이며 아무도 모르는 창고 구석에 꼭꼭 숨겨뒀어요. 아마 이 기사 나가면 화들짝 놀랄 거예요. 사실 보기엔 아주 어설프겠지만 이를 악 물고 하는 거예요. 애낳고 난 뒤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애들 돌보느라 짬이 하나도 없어요. 이 시간 만큼은 저를 위한 소중한 시간이니 그만큼 열심히 해야죠. 옆집 아주머니랑 같이 시작했는데 예상했던것보다 훨씬 재밌어요. 낮이고 저녁이고 틈나는대로 연습해요. 아직 "몸따로 마음따로"지만 두고보시라구요. 이제 따뜻한 오월이 오면 아이들 손 붙잡고 같이 광장을 누빌거예요. 요즘엔 습관이 생겼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하늘부터 본다니까요. 비오는 날엔 괜히 아침에 힘이 빠져요. 이제 황사도 그만 왔으면 좋겠어요. 연습에 방해 안되게" 글=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