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떠나는 한국인들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 이전 수준까지 회복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4일 모두투어에 따르면 지난달 해외여행 송출객 수는 15만5464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 대비 53.5% 증가한 수다. 5월 해외 패키지 송출객수는 8만4616명, 항공권은 7만3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6.2%, 81.4% 증가했다. 특히 중국 지역 회복세가 가팔랐다. 5월 송출객수가 1년 전에 비해 10배 넘게 뛰었다(1017% 증가).중국지역은 지난해 5월 1323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1월부터 모객이 증가하기 시작하며 지난 5월에는 11배 가량 늘어난 1만4777명을 기록했다. 모두투어 관계자는 "중국은 코로나19 이후 여행 재개 시기가 늦어진 영향"이라며 "4월에는 6000%대였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중국 장자제, 백두산, 태항산, 구채구 등 풍경구 지역 위주 항공 공급석이 늘어나면서 중국 여행 수요 증가세는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1분기와 비교해 비수기로 여겨지는 5월의 해외여행 송출객수는 전월 대비 소폭 감소세를 보였지만 여름 성수기를 앞둔 하반기 해외 패키지 예약률은 6월(13.9%), 7월(21.8%), 8월(22.9%) 모두 증가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지역별 비중은 동남아(43%) 일본(19%) 중국(18%) 유럽(11%) 남태평양 및 미주(10%) 순으로 동남아 지역 강세가 이어졌다.모두투어 관계자는 동남아 지역 강세가 이어지는 이유에 대해 "코로나19 이전에도 비중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며 "비교적 단거리여서 접근성이 좋고 관광형, 휴양형 따라 여행 성향이 갈리지만 동남아 지역은 그 안에서도 선택할 수 있어 인기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
집에 새가 날아들었다. 대학 다닐 때다. 문 열린 마루로 들어온 새가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날아다녀 소동이 벌어졌다. 동생이 안방으로 새가 다시 들어오자 얼른 문을 닫아 가뒀다. 새가 이 벽 저 벽을 타고 날아다닐 때 들어온 아버지가 문을 열라고 했다. 문이 열리자 새는 방안을 두서너 바퀴 돌다 밖으로 훨훨 날아갔다. 집 주위에서 흔히 보는 새는 아니었다. 회갈색에 흰 줄이 선명한 날렵하게 생긴 새였다. 참새나 딱새보다는 크고 까치보다는 작지만, 날렵하고 매끄러운 데다 경쾌한 울음소리를 냈다. 이튿날 그 새가 다시 집에 왔다. 마루 문은 열려 있었지만, 안으로 날아들지는 않았다. 오동나무에 앉았던 새는 측백나무로 단풍나무로 몇 번을 옮겨 다니며 때로 밝은 울음소리를 냈다. 사흘째 그 새는 집에 찾아왔다.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새 울음소리가 특이해 온 줄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와 동생들은 먹이를 부리나케 준비해 마당에 흩뿌려 두었지만 새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사흘 정도 집에 들른 새는 더는 오지 않았다. 더는 새가 집을 찾아오지 않던 날 밤에 아버지가 불렀다. 아버지는 “그 새가 아무래도 심상찮다. 그 특유의 울음소리가 마치 뭔가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라고 했다. 이어 “옛날 네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조상님네들이 간혹 미물들의 몸을 빌려 후손들에게 나타나 깨우침을 주기도 한다’며 느닷없이 나타난 저 새가 뭔가 우리 집안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귀띔해주는 거 같다. 혹 짚이는 게 없느냐?”고 물었다. 동이 트기 전 건넛방의 아버지가 소리 질러 모두 깼다. 마당에 천막 쳐 만든 연구실에 불을 켜고
김사과를 꼬박 따라 읽은 지 어느덧 10년이 넘어가지만 나는 김사과를 생각하면 여전히 심각해진다. 간혹 좋은 소설이나 시, 영화를 만나면 난 이 작품의 모든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 고 곧장 말하게 된다 (물론 진심이지만). 그러나 내게 김사과는 모든 문장을 이해에 앞서 동물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이다. 어쩌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김사과 소설집 <영이>)에서 내가 처음으로 ‘공포’를 이해했기 때문이 아닐까.“열심히 살지 않으면 뒤처지고 뒤처지면 끝장”이라는 아버지의 말대로 “엄청난 성취감”을 위해 “인생을 바쳐온” 주인공. 하지만 지금 그에겐 “단지 분노뿐이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의 눈은 그저 ‘공포’에 질려 있을 뿐인데, 똑같은 눈은 거울에서도 발견된다. 왜 모두 공포에 질려 있을까?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무언가 얻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약속—누구에게서?—은 단지 기만이었다. 지나간 삶, 다가올 삶. 어떤 표정도 없는 시간이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실감하기 시작한다. 그 앞에서 오롯이 무력한 스스로가, 주변의 모든 이와 똑 닮은 자신이 분노의 근본 원인이다.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던 그는 어느 국밥집에 당도한다. 그 국밥집의 주인인 늙은 여자는 그와는 달리 감정을 느끼고, 삶에 기뻐하며, 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준다. 그러나 그는 그 두텁고 다채로운 삶으로의 초대를 거부하고 그 여자를 살해한다. 이를테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노파와 소냐를 동시에 살해했다고 하면 어떨까. 이어 본가로 돌아온 그는 이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