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과거는 살아 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역사의 풍파가 빚어낸 결정체일 것이다. 세계를 움직여 온 강대국들의 힘,그 원천은 무엇일까? 현대 정치 및 경제제도는 당초 무엇을 위해 탄생한 것일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잠재적 위협은 무엇이며 강대국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 퍼거슨 교수는 서구의 현대사를 재조명했다. '종이와 쇠''로스차일드 일가''전쟁의 연민''실제의 역사' 등 독특한 역사서로 잘 알려진 그의 저서가 국내에 출간되기는 처음이다. 이 책 '현금의 지배'(니알 퍼거슨 지음,전철환 해설,류후규 옮김,김영사,1만9천9백원)는 매끈한 번역으로 읽기에 부담이 없고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의 해설 또한 매우 유용하다. 퍼거슨 교수는 돈,즉 경제가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는 관념을 인정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의 '낡은 경제결정론'은 물론 현대의 '새로운 경제결정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경제적 동기보다 다른 동기들이 더욱 지배적이었던 역사가 빈번했음을 강조한다. 카알라일이 말했듯이 '언제나 활동하는 존재의 혼란'으로 역사를 인식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현대 국가의 골격인 '권력의 사각형'(의회,징세제도,공공채무 관리,중앙은행을 의미함)이 전쟁 자금의 조달을 위해 생겨났으나 이들이 평화시에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음을 밝힌다. 특히 영국의 제도가 확산되고 국제 채권시장이 발전함으로써 국제 정세와 국제 채권시장이 긴밀히 연결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국제자본시장이 국내외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거꾸로 국제자본시장이 국가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권력의 사각형'이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민주체제가 독재체제보다 유리하다고 강조한다. 다만 민주국가가 그 힘을 행사할 의지를 잃으면 생산적으로는 열등하나 파괴함에 있어서는 우월한 독재체제의 군사적 도전에 몰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곱씹어 볼 만한 부분이다. 9·11 테러 이전에 출간되었지만 놀랍게도 그는 이 책에서 '앞으로 당분간은 미국을 직접 공격할 의도를 가진 나라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대도시에 대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고 예언했다. 그의 예리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쨌든 현재 세계질서가 급변하고 있는데 독자들은 그 이유를 이 책에서 간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뜻에서 오늘을 사는 지식인들의 필독서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김규한 상명대 경제통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