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은행의 자금운용 총사령탑인 지동현 상무(기관고객.자금본부장)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은행과 인연이 없던 '이방인' 출신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재무관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1년부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다 작년 2월 전격 스카우트됐다. 그런 지 상무가 요즘 은행가에서 채권 거래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취임 당시 은행측과 연간 자금운용 수익 목표로 1천50억원을 약속한 뒤 1천9백억원의 이익을 안겨줬다. 채권 거래에서만 1천1백억원의 수익을 내 은행권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같은 은행의 이건호 상무 역시 금융연구원 출신으로 리스크관리본부를 이끌고 있다. 국내 최고(最古)의 역사를 자랑하는 보수적 사풍의 조흥은행이 과감한 외부 전문가 발탁으로 은행권의 오랜 전통이었던 '순혈주의' 쇄신에 앞장서고 있다. '스페셜리스트'를 적극 영입하고 있는 곳은 조흥은행뿐만이 아니다. 서울은행 강정원 행장은 지난 2000년 8월 모든 영업점포에 걸쳐 영업부문과 영업지원부문을 분리하고 본점에 영업지원본부를 신설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 은행권에서는 처음 시도된 조치였다. 씨티은행 서울지점의 김명옥 업무총괄이사를 신임 영업지원본부장(상무)으로 스카우트했다. 씨티은행에서 함께 손발을 맞춰봤던 데다 선진 은행의 업무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상무는 취임 후 1년6개월 동안 모든 지점의 영업과 후선업무를 분리하는 작업에 주력,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같은 은행의 최동수 부행장, 국민 박종인 부행장, 신한 오용국 신용순 상무, 하나 송갑조 부행장 등도 외부에서 영입됐다. 외부 수혈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기존 조직과의 융화 문제가 거론된다. 서울은행 원명수 부행장은 지난 2000년 8월 한빛은행 전산정보본부장(상무)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할리스빌보험그룹 부사장을 지낸 그는 한빛은행에 몸담은지 1년5개월 만에 둥지를 옮겼다. 미국 국적인 그가 '토종 한국식' 조직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는게 금융계의 중론이다. 한편에선 객관적으로 검증된 능력보다는 은행장과의 연(緣)으로 외부 인력을 영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면서 은행권 인력의 자유로운 교류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연줄타기'나 '철새' 시비를 불식시켜 스페셜리스트 시대를 뿌리내리는 일은 은행들이 해결해야 할 몫이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