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9:45
수정2006.04.02 09:48
"사람을 만나는 게 일이지만 반겨주는 이는 거의 없다.
경비실에서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다.
알음알음으로 어렵사리 찾아가도 상대는 본척만척이다.
때로는 야릇한 눈길로 모욕감만 안겨주는 이도 없지않다.
우리는 그래도 하루에 수십 수백명을 만나 보험에 대해 논(論)해야한다" 속칭 "보험아줌마"로 불리는 생활 설계사들이 일하기 힘들 때 자조적으로 하는 얘기다.
생노병사의 걱정을 덜어주며 인생의 상담사 역할을 하는 어엿한 세일즈우먼이지만 세간의 시각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그래서 중도하차하는 사람도 많다.
SK생명 관악지점 미래영업소에 근무하는 김정애(39)씨.생활설계사 중에서도 종신보험을 판매하는 재무설계사다.
수없이 자존심을 꺽어가며 연륜을 쌓아올린지 7년.이제는 회사 내에서도 "중고참"의 반열에 들어선 김씨지만 지금도 새 고객을 만나려면 기대와 함께 긴장이 앞서 찾아온다.
프리젠테이션까지만 가자
"성공해야 할텐데..."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하고 숱하게 되뇌어 보지만 열중 여덟아홉은 보험상품을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않는다.
그런만큼 기회가 만들어 졌을 때는 고객을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
세일즈는 노트북을 열고 간단한 보험사 소개와 보험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프리젠테이션으로 시작된다.
노트북의 전원을 켜는 순간 그는 다른 세계로 빠져든다.
약간은 긴장된 눈빛과 조금은 떨다리는 듯한 목소리에서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을 엿보인다.
흡사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와 같다.
회사측이 마련한 보험판매 프로그램(NIMP)으로 기초통계을 보여준다.
펜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고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상대방의 미세한 반응도 간파해야 합니다.
지루해하는 것같으면 화면을 서둘러 넘기고 관심을 보이는 고객에는 설명을 추가로 해야하니까요.
어쨌 프리젠테이션을 무사히 마치면 절반은 성공입니다"
의학전문가 겸 재무전문가
그는 짬이 나는대로 질병과 재테크에 관한 책을 읽는다.
"설계사 사회에서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박학다식 해야합니다.
예전에야 안면장사라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예요.
고객의 질문에 충분히 답을 해주지 못하면 프리젠테이션에서부터 막히니까요"
고객이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만 물어오는게 아니다.
가족의 병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풀고 싶어한다.
알콜중독 식도암 후두암 간질환 등등 별의별 질병에 대해 왜 발생하는지,증세는 어떤지,어떤 병원 어떤 의사가 용한지를 꿰고 있어야 한다는 것. 자녀의 수를 물어보고 자녀 결혼비용으로 어느 정도를 예상하는지도 캐묻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금 수급의 불균형 정도 등를 알아낸다.
그래야 유가족 생계에 필요한 최소 자금을 역산할 수 있다.
"선뜻 보험에 가입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봐요.
1억원이 넘는 무형의 상품을 누가 그렇게 쉽게 사겠습니까" 김씨는 계약 성사여부에 관계없이 스스로 영업성과에 만족하자고 다짐한다.
오늘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언제가 자신에게 보험을 들어줄 것이란 믿음이 있어서다.
남편친구의 권유로
김씨가 보험영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95년.SK생명에 근무하는 남편 친구의 권유로 용기를 냈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란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능력급이라는 점도 마음을 끌었다.
초라한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집을 장만하는데 자신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 김씨는 작년 11월 꿈에도 그리던 집을 장만했다.
결혼 13년만이다.
김씨는 삼성물산 비서실에서 4년동안 근무한 경력이 있다.
깔끔한 예절이 몸에 배어 있다.
친근감을 주는 외모도 세일즈에 도움이 되고있다고 주변에서 말한다.
물론 남모를 고충도 많았다.
온 종일 사람을 만나러 돌아다니다 보니 처음에는 다리가 퉁퉁부어 걷기조차 어려울 때도 있었다.
오피스 빌딩의 경비를 피해 비상계단으로 몰래 올라갔다가 중간에 붙잡혀 내려온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특히 주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못한다는 점이 늘 마음에 걸린다.
김씨는 "한화국토개발에 근무하는 남편의 도움이 없었으면 재무설계사로서 자리잡기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래하고 싶어요
김씨는 6백여명의 고객을 관리하고 있다.
여성 고객이 많은 편이다.
경조사를 챙기고 전화나 우편물로 안부를 묻는다.
김씨의 평균 월수입은 5백만원 가량이다.
이중 20% 가량은 고객 관리에 들어간다.
요즘에는 고객 소개로 영업을 하는 사례가 잦아져 약간은 여유가 생겼다고 귀뜸한다.
김씨는 보험영업을 가능하면 오랫동안 하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선 경제 및 금융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느낀다.
김씨는 옷에 대한 투자 보다는 배움에 투자하는 설계사가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자신 재무 설계사로서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방송통신대에 진학했다.
이익원 기자 khs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