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에서는 살아남는 것이 절대선(善)이 아니다. 쟁쟁한 고수들과의 혈투(血鬪)를 거쳐 진정한 무림고수로서 자리매김해야만 하는 것이 생존의 법칙이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다만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 지난하게 전개될 뿐이다. "외환시장"은 이같은 강호무림의 룰이 그대로 부합되는 장이다. 외환딜러는 이 시장의 참가자이자 설계자이다.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군 중 하나지만 그만큼 책임과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현실.특히 외환시장에서는 누군가 돈을 따면 잃는 사람이 반드시 있는 제로섬의 원칙이 적용된다. 외환딜러를 일컫는 말 중에 "0.1초의 승부사"란 호칭이 있다. 순간의 판단에 따라 수십~수백만달러를 쥐락펴락하기 때문이다. 냉철함과 순발력,승부욕을 갖춰야 한다는 공인된 도박사에 다름 아니지만 찰나에 희비가 엇갈리는 교차로에서 그들은 고독과 처절한 격전을 벌인다. 각종 정보를 취합하고 이를 판단하는 몫은 개인에게 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다른 통화와의 교환비율인 환율은 일국의 경쟁력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외환딜러의 역할은 여느 직업보다 묵직하다. 국내외 정치.경제상황,시장수급,주식시장,금리,반도체나 유가,천재지변,스포츠,계절 등 수많은 변수가 시장재료로서 도마위에 올려진다. 이런 점에서 혹자는 외환시장을 "종합예술"이란 말로 표현한다. 중독성도 강하다. 집에 가서도 스크린을 떼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직업병에 시달리는 딜러들도 간혹 있다. 국내에는 외국환은행.종금사 등 65개가 거래에 참여할 수 있으며 하루평균 40여개가 실제 시장에 참여한다. 외환딜러는 150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 거래는 평균 30억달러를 위아래로 오간다. 외환거래를 중개하는 서울 외국환중개와 한국자금중개가 중간에 있다. 외환딜러라함은 원/달러 즉,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있는 환율뿐 아니라 이종통화나 채권,각종 파생상품을 다루는 사람들을 통칭한다. 그러나 가장 규모가 큰 원/달러만을 놓고 얘기하자면,은행간(인터뱅크)딜러,기업체(코퍼레이트)딜러로 크게 나눠진다. 또 은행간딜러를 살펴보면 대개 주딜러(주포)와 보조딜러로 나눠진다. 각자 외화자산의 상태를 나타내는 포지션을 가지고 거래에 나서며 주포는 자신뿐 아니라 전체적인 포지션을 파악하면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들만의 리그=외환딜러는 오전 9시 30분에서 오후 4시 30분까지 생체리듬이 폭발적으로 작동한다. 신경계를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긴장감으로 예민해진 그들의 촉수는 온통 스크린과 전화를 향해 있다. 비드(달러사자),오퍼(달러팔자)는 그들의 고유한 언어다. 갑자기 수화기를 든다. 그리고 짧은 외침.그리고 결과물은 이미 요리된 채로 자신 앞에 떨어진다. 대개 40세 전후를 딜러의 정년으로 본다. 판단력의 노화는 숨길 수 없는 법.그만큼 수명이 짧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시장이 출렁거림이 반갑다.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만큼 많이 잃을 수도 있다. 시중은행의 경우 2개월 내리 손실을 봤을 경우 교체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롤러코스트를 탄 손을 놓지 않는다. 환율이 시시각각 변신할 때 그들은 승부사로서의 기질을 여지없이 발휘한다. 찰나의 판단에 따라 엄청난 결과가 산출되기 때문에 한 순간 과중되는 스트레스와 긴장감,그리고 위험부담까지 감안해 일부 딜러는 시장을 단순한 일터로서 개념보다 자신의 일부로 여기기도 한다. 대체로 외환딜러는 시중은행과 외국계은행으로 나뉘어져 있다. 분위기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나는 것도 사실.성과급 제도의 인식과 실행이 잘 이뤄지는 외국계와 달리 시중은행의 경우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시장을 주무르는 대표주자들=이 바닥에도 수익성과 거래규모면에서 손꼽히는 대표주자들이 있다. 지난 83년부터 딜링에 발을 담궈 현직딜러중 최고참격인 외환은행의 이창훈 팀장은 2000년 퇴직후 실적에 따른 보수를 받기 위해 계약직으로 전환,10억원대의 인센티브를 받았다는 소문의 주인공이다. 조만간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의 사사를 받은 외환은행의 이정태딜러는 지난 97년부터 딜링에 나서 현재까지 격전을 벌이고 있다. "대중이 가는 뒷길에 꽃길이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중 하나. 시장의 반대로 생각하면서 다수가 뭐라건 자신만의 논리로 심리적 공포를 밀고 나갈 때 결과가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국내 외환시장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JP모건의 이성희딜러."최고의 원/달러 딜러"가 꿈인 그는 격전이 예상되는 날은 파란 넥타이를 메는 징크스를 갖고 있다. 90년부터 시작, 산업은행을 거쳐 JP모건에서 시장을 흔드는 "큰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장에서 5%정도 점유율을 지니고獵?한빛은행의 박시완딜러는 IMF체제를 거치면서 시장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으며 시장참여자들의 리스크도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다양한 파생상품 거래와 원화의 국제화를 통한 시장의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오피니언 리더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한미은행의 류현정딜러는 아직 미혼이다. 10년째 시장과 함께 하면서 자신만의 꼼꼼한 논리와 전망으로 신망을 받고 있다. 행내 공채를 통해 발을 들여놓은 후 딜러생활을 계속하는 이들도 꽤 있다. "스페셜리스트"로서 인정받기 때문에 공모를 하면 경쟁률이 꽤 높은 편.제일은행 류동락딜러는 지난 90년 12월 공채 4기 합격후 대부분을 딜링룸에 둥지를 틀고 있다. 같은 은행 외환딜러 공채 출신으로 2000년에 뱅크오브아메리카(BOA)로 옮긴 송화성딜러가 있다. 국민은행의 노상칠딜러도 같은 케이스.97년 행내 공모를 통해 딜링을 처음 맞 본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주포로 자리잡고 있다. 국민은행의 하루거래량은 7~9억달러 정도로 시장점유율이 12%에 달하고 있으며 그는 이같은 시장유동성 제고에 기여를 하고 있음을 자부심으로 갖고 있다. 같은 은행의 이성돈딜러는 정책당국이나 시장에서 정확한 환율예측을 하는 딜러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환리스크 관리에 있어서는 최고의 권위자로 꼽힌다. 기업체와 대학강의 가릴 곳없이 환리스크에 관한 유명강사로 정착된 그는 강의할 때마다 강의장이 메워떠져 한 겨울철인 데도 열기가 뿜어 나온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조흥은행 김병돈딜러.11년째 외환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일선 딜러들의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시장 유동성의 상당부분을 담당하는 조흥은행의 주포로서 시장에서는 "영원한 딜러"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93년 딜링룸에 첫 발을 디딘 기업은행의 박상배딜러는 지난 2000~2001년까지 국제금융센터에 파견근무를 다녀오는 등 자체적인 툴로 외환시장을 분석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또 시장에 신한은행의 존재를 각인시킨 배진수딜러(현 홍콩 현지법인 근무)의 뒤를 이은 최정선딜러는 딜러라는 직업의 고독함을 깊이 각인하면서도 도전과 성취감을 함께 만끽할 수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현재 대부분 외국계은행 딜러들은 시중은행을 거쳐 스카우트된 사례가 많다. ABN암로은행의 정인우딜러는 93년부터 제일은행에서의 딜러를 시작,97년 현 직장으로 옮겼다. 정딜러는 "IMF이후 시장변수가 너무 많아졌다. 예전만해도 수급만 잘 보면 돈이 보였으나 지금은 국제금융시장 전반을 이해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플릿보스턴파이낸셜의 김영천딜러는 93년 서울은행에서 딜러로 출발,97년 현 직장으로 옮긴 케이스. 자타칭 프랑스의 배우 알랑드롱임을 내세우는 HSBC 이주호딜러는 딜러1세대와 딜러신세대간의 가교역할임을 자임하고 있다. 불과 본격적인 시장으로서의 위치를 갖춘지 10여년에 불과한 국내 외환시장의 역사를 글로 정리할 생각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딜러들의 친목모임인 포렉스클럽이 있다. 지난 78년 설립돼 외국환은행 딜러들의 사랑방이자 진중하게 현안을 논의하는 장이다. 매년 "올해의 딜러"를 선정한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